"손주에게 학교서 배운 것 가르치고 싶다"

다양한 사연으로 학업을 제 때 할 수 없었던 늦깍이 중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수업에 귀 기울이고 있다.
“배움에는 늦음이 없어요.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24일 오전 경북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포항중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 첫 수업 시간.

84명의 늦깎이 학생들은 총 3개 반으로 나눠 영어·수학·컴퓨터 등 여느 중학생들이 배우는 교과목 수업을 시작한 가운데, 알파벳 대·소문자 쓰기와 더하기·빼기, 컴퓨터 사용법 등 기본기부터 수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혹여나 선생님의 설명 하나라도 놓칠까 봐 초롱초롱한 눈과 열정적인 자세로 수업에 임하는 모습이 멀리서 봐도 느껴졌다.

당초 2개 반 56명을 모집하려 했지만, 배움에 목마른 신청자가 174명이나 몰려들어 3.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 개교 직전 추가로 반을 1개 더 늘렸다.

특히 그 옛날 오빠와 남동생의 학업과 성공을 위해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여성 만학도 학생 비중이 남성의 3배가량 많았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지역의 멀고 가까움도 막을 수 없어 포항은 물론 경주·영덕과 멀리 울진과 안동에서도 통학하는 학생이 있었다.

“사업으로 큰 성공도 거둬 봤지만 최근 암에 걸리니 모든 것이 허망하고 특히 학업을 제 때 못해 한이 남아 입학했다”, “손주에게 배운 것을 가르치고 싶다”, “영어를 배워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등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첫수업을 앞두고 잠 못 이루는 모습은 여느 중학생 모습보다 더 순수했다.

한 학생은 “공부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반 친구들에게 떡을 돌리며 환하게 웃었고, 점심시간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는 모습에서 50~60년 전으로 사춘기 소년 소녀로 돌아간 모습이 보였다.

최고령 학생인 고보석(82)옹은 “중 1때 6·25전쟁이 나서 피난 등으로 학업을 제 때 하지 못하고 계속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마침 방송중이 개교한다고 해서 가장 먼저 지원하게 됐다”며 “언제 저승사자를 볼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서 방송고와 대학교에도 진학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한해 수업은 방학 없이 매달 2·4주 토요일 6시간씩 출석수업(24일)과 컴퓨터·스마트폰으로 진행되는 원격 수업(167일)으로 진행된다.

1·2학기 기말고사는 물론 5월에는 윳놀이 등 종목으로 진행되는 운동회가, 10월에는 전국의 방송중 학생들이 천안에 모여 합창과 시·바둑 등을 겨루는 전국학예경연도 열린다.

정길수 방송중 교무부장은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교사는 물론 어린 중학생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며 “배움의 꿈을 이루려는 만학도들이 많은 만큼 향후 경북에 더 많은 방송중학교가 개교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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