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달이 뜬다

밤의 뚜껑을 따고 나온 번데기들이 간이 테이블에 앉아

별을 마신다

컵라면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주면

굳은 혀들이 깨어나 풀어놓는 매콤한 언어들

풀어진 넥타이 하나 보름달로 행운의 즉석복권을 긁는다

구름으로 채워진 함량 미달의 과자 봉지들은

팽팽히 헛바람으로 부풀어 있

다차갑게 식은 유리병들의 마개를 따거나

삼각형을 베어 먹으면 동그라미가 될 거라 했지만

조각 난 아이들은 달빛 우유나 몇 갑의 담배를 훔쳐 달아났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 찍힌 바코드를 지울 수가 없어서

아르바이트는 천직이 되었다

김밥들은 자정을 기다려

어제라는 유통기한을 지우고 폐기된 하루를 위장에 채워주곤 했다

어느 날 사막으로 걸어간 아버지는

불 꺼진 도시의 별을 지키는 편의점이 되었지

가시뿐인 손목에 걸린 시계가 늘 가리켜주던 25시(후략)





감상) 전기청소기를 주문했다. 청소기를 쓰지 않았던 나날 오랫동안 무엇을 청소해야 할 지 몰랐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청소할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은 아니다. 청소기를 사고 나면 그걸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날 그 편의점 의자에 앉아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면서 내가 했던 일이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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