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바닷가 출생…이제마와 함께 ‘근대 한의학 양대 산맥’

▲ 석곡 이규준.
경북 포항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김일광 동화작가가 포항지역의 선지식인 ‘석곡 이규준’(내인생의책)을 발간해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석곡 이규준’을 시대가 알아주지 않은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말한다.

나라가 나라 구실을 하지 못했던 암울한 일제강점기. 나라는 백성을 버렸고, 이규준을 알아주지 않았다. 시대는 그를 사문난적으로 내몰았고, 일제의 탄압마저 휘몰아쳤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쳤고, 백성을 믿고 섬겼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를 알지 못한다.

석곡 선생은 포항 영일 바닷가 임곡마을에서 나고 자란 외톨박이였다. 먼바다를 항해하다가 표류한 배처럼 떠돌다 가셨다. 그래서였을까. 푸념처럼 100년이 지난 뒤에야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고 찾게 될 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로부터 어언 100년, 우린 광복을 맞았고, 나라 구실을 하는 나라를 얻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린 그를 모른다. 2018년, 너무나 늦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알아야 한다. 백성을 섬긴 조선의 마지막 유의 석곡 이규준. 그를 최초로 조명한다.

“내 삶에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이 세 가지 있었다. 가난했던 것, 집안이 변변치 못하여 스승을 얻지 못한 것, 조선말, 혼란기에 태어난 것이 내 삶을 끌고 왔다.”

석곡 이규준 선생은 조선말 1855년에 태어나서 1923년 일제강점기에 세상을 떠났다. 그야말로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사셨다. 갯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낮에는 논밭으로 나갔으며, 밤에는 골방에 찾아들어 스스로 학문의 경지를 열어나갔다. 가난했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 나는 처지를 알고 그들과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학문을 어렵게 스스로 익혔기 때문에 그 글을 자신의 부귀를 위해 쓰지 않고 백성들의 생활 곳곳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가 의술에 나선 것도 이처럼 백성들을 위한 배려에서 비롯됐다.

우리 모두가 떨쳐버리고 싶어 하는 흙수저 처지를 다행으로 받아들였으며, 오히려 곤궁함을 에너지로 삼아 삶의 완성을 끌어냈다는 역설적인 토로가 함부로 들리지 않는다.

북쪽에 이제마가 있었다면 남쪽에는 이규준이 있었다

한의학계에서는 “북쪽에 이제마가 있었다면 남쪽에는 이규준이 있었다”는 말을 한다. 석곡은 사상체질(四象體質) 의학으로 유명한 동무 이제마(1837∼1899)와 함께 ‘근대 한의학의 양대 산맥’으로 통한다.

선생은 ‘부양론’과 ‘기혈론’을 주창했고, 한의학의 경전이나 다름없는 중국의 ‘황제내경’과 허준의 ‘동의보감’을 ‘소문대요’와 ‘의감중마’로 재정리했는데, 이러한 업적은, 허준, 이제마와 더불어 재평가돼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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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광 동화작가
저자 김일광 작가는 30년 가까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1984년 창주문학상, 198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기도 했으며, 대표작 ‘귀신고래’는 2008 창비어린이 ‘올해의 어린이 문학’에도 선정됐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친구가 생길 것 같아’,‘조선의 마지막 군마’,‘말더듬이 원식이’,‘강치야, 독도 강치야’,‘외로운 지미’,‘사라진 산’,‘바위에 새긴 이름 삼봉이’,‘독도 가는 길’등이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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