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개인 뒤 소금쟁이를 보았다
곧 바닥이 마를 텐데, 시 한 줄 쓰다 마음에 걸려
빗물 든 항아리에 넣어두었다
소금쟁이가 뜨자 물이 갑자기 생각난 듯 물이 되었다
마음에 소금쟁이처럼 떠 있는 말이 있다
가라앉지도 새겨지지도 않으면서 마음 위로 걸어다니는 말
그 말이 움직일 때마다 無心은 문득 마음이 되었다
잊고 살았다 그러다 열어 본 항아리
그 물의 빈칸에 다리 달린 글자들이 살고 있었다
마음에 둔 말이 새끼를 쳐 열 식구가 되도록
눈치 채지 못했다, 저 가볍고 은밀한 일가를 두고
이제 어찌 마음이 마음을 비우겠는가
내 발걸음 끊었던 말이 마음 위를 걸어 다닐 때
어찌 마음이 다시 등 돌리겠는가
속삭임처럼 가는 맥박처럼 항아리에 넣어둔 말
누구에게나 가라앉지 않는 말이 있다




감상) 경주 남산에는 칠불암이라는 참 자그맣고 예쁜 암자가 있는데요. 그 암자에는 그보다 더 단아한 비구니 스님이 계셨지요. 그 어떤 질문에도 똑같은 대답만 하셨는데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요. 늘 듣던 말인데 그곳에 가서 그 말씀 듣고 오면 정말 마음이 비워지는 것 같더라구요. 내 마음이 상상하는 것들, 그 사이에 태어난 갈등들이 잘 알아차려지는 것 같더라구요.(시인 최라라)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