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영의정 류성룡은 개성에 있던 명나라 제독 이여송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여송은 “명군에게 군량을 제때 보급하지 않은 죄를 물어 군법을 집행하겠다”며 호통쳤다. 한 나라의 재상이 이런 수모와 치욕을 겪어야 한 것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편단심 때문이었다.

이 일이 있기 며칠 전 파주의 벽제관 싸움에서 왜군에 패한 이여송은 “이제 왜군과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명나라 군대만 믿고 있던 조선은 충격에 빠졌다. 류성룡은 연일 이여송을 찾아가 “빨리 명군을 진격시켜 왜군을 밖으로 몰아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여송은 “싸우려면 너희들이 직접 싸워라”며 거부했지만 류성룡은 채근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격분한 이여송은 군량을 핑계로 군법 집행을 들먹이며 류성룡의 무릎을 꿇린 것이다.

류성룡은 ‘징비록’ 서문에서 “나 같은 불초한 사람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중대한 책임을 맡아 위태로운 시국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며 자신을 낮추고 조선 지도층의 과오와 무능을 사실대로 고백했다. 류성룡은 처참했던 임란에서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일등공신이었지만 선조는 늘 류성룡을 견제했다.

이런 선조의 마음을 간파한 류성룡 반대세력들은 류성룡을 부정축재자로 몰아세웠다. 류성룡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 뇌물을 받고 친척들을 관직에 진출시키고 훈련도감의 군사들을 훈련시킨다는 명목으로 군 자금을 받아 이를 횡령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서울의 자택은 조촐하게 보여도 안동의 본가엔 선물이 줄을 잇는 등 엄청난 재물이 쌓여 있다는 것이었다. 전란으로 모든 백성이 고통에 빠져 있는데 류성룡만 재산을 증식했으니 파직시키라는 상소였다. 사간원과 사헌부 등 서인 세력은 류성룡의 파직을 요청, 선조는 이를 받아들여 파직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구국의 공신 류성룡의 청렴결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있고, 함께 국사를 도모했던 참모들도 줄줄이 감옥에 있다. 지도층의 과오와 무능을 고백해 줄 류성룡 같은 지도자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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