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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증평에 사는 모녀가 사망했다. 세 살배기 딸은 본인의 의지와 반대로 엄마에 의해 질식해 숨지고 엄마는 딸의 목숨을 앗아가는 동시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녀의 죽음 앞에 머리 숙여 부끄러운 마음으로 명복을 빈다. 엄마는 ‘남편이 먼저 떠나고 혼자 살기 너무 힘들다’고 했다. 고인의 절규에 응답하는 것이 산 자들의 책무다.

경찰에 따르면 모녀는 100일 전쯤 목숨이 끊겼다. 남편이 지난해 9월 자살하고 100일 정도 시간이 흐른 시점이다. 남편이 사업하다 대부업체 등에서 진 빚 1억 5000만원은 남편 사망 후 온전히 아내의 몫이 되었다. 어린 자녀가 있는 환경에서는 생활비를 벌 방법이 안 보였다. 민간임대아파트 보증금도 압류되어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떠난 직후 어머니까지 지병으로 숨졌다. 

어떤 사회, 어떤 지역, 어떤 나라에서 사람이 자살한다는 건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살은 일상적인 일로 치부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자살한 사람들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참담하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국가나 사회일 텐데 국가와 사회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인간적인 고통과 슬픔을 왜 느끼지 못하고 무감각하기만 한가. 

4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뒤 이른바 ‘송파세모녀법’이 만들어졌지만 약간의 개선책이 담겼을 뿐이고 이름과는 달리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구원책은 빠져 있었다. 전기가 3개월간 끊기거나 단전, 단수가 될 때 관계기관에 통보를 의무화한 내용이 담겨 있지만 아파트의 경우 관리비에 이들 비용이 포함된 탓에 해당 기관에서 파악조차 못 했다. 죽음을 결행 뒤 3개월이 지나서야 관리사무소 직원에 의해 발견되었다. 일부 정치인과 정당들이 하자투성이의 법률을 만들어 놓고 ‘송파 세모녀법’을 만들었다고 자랑하고 다녔으니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을 이용한 것 아니고 무엇인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에도 무수한 송파 세 모녀가 있었고 지금도 송파 세 모녀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증평 모녀 사건은 송파 세 모녀 사건 못지않게 참혹한 일이다. 두 사건 모두 남편이 자살한 뒤에 발생했고 극심한 민생고 때문에 야기된 사건인데도 정치권과 국가의 대응은 너무나 다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때는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분주한 모습이라도 보여 주었는데 증평 모녀 사건에 대한 반응을 보면 조용하기만 하다.

보건복지부가 ‘증평 모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원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한 게 정부의 유일한 반응이다. 박능후 장관은 “이번 모녀의 사건은 복지부, 관계기관 등에서 생활실태를 미리 파악했더라면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말했는데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제 3자가 말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책임 회피적 자세다.

지금까지 정부 부처와 국무총리, 대통령과 국회는 ‘민생고 참사’가 나면 무시하기 일쑤고 대응하는 경우에도 하는 척하다가 분위기 식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그냥 넘어가 버렸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다. 국민의 삶과 고통에 대한 대처방식이 이전 정권의 방식과 확연히 달라야 한다. 대처방식이 똑같다면 시민들이 촛불 들고나온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약간의 개선책을 내어놓아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장관이 나와서 지원범위를 넓히겠다고 말하는 정도로 대응해서는 이전 정권과 다른 방법이 나올 수 없다. 대통령이 앞장서고 범정부 차원으로 대응해야 한다. 빈곤과 빚, 생활비 때문에 자살하는 비상상황이 계속되는 한 공동체로서 대한민국은 없다.

연고가 없어 증평 모녀 장례식도 못치르고 있다고 한다. 어렵게 살게 된 사람에게 생존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하는 의미로, ‘똑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민생 대책을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의미로 증평 모녀의 장례식을 정부가 주관하여 거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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