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이희 대구시청 마라톤 클럽회장
아파트 숲 사이로 길게 하품을 하는 새벽달이 정겹다. 오늘은 일만육천여 명의 건각들이 서로 자웅을 겨룰 국제 마라톤 대회가 달구벌에서 펼쳐진다. 광주 달림이 들과 대구의 달림이 들이 하나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빛고을 광주의 달림이 들이 대구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서는 길이다. 마음이 바쁘다.

광주와 대구의 달림이 들의 만남은 올해로 4년을 맞는다. 우리 마라톤 동호회에서 “달빛동맹에 우리도 뭔가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고 고민하던 중 함께 달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었다. 사는 곳이 다르고 억양도 다르지만 맞잡은 손길이 오랜 친구와 같이 푸근하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이야기에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아마도 마라톤이 우리를 여기에 모이게 했으리라.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에는 봄꽃들이 만개하였다. 달림이 들의 달뜬 모습 위로 꽃잎들이 날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외치는 구십이 넘은 할머니와 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가씨도 대열에 합류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선남선녀들과 어울려 달구벌을 뜨겁게 달군다.

헬기 소리가 흥겨운 축제 분위기를 더한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와 봄꽃의 향기에 가슴이 뜨겁다. 빛고을 달림이 들과 손을 마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축포 소리와 함께 꽃가루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출발이다.

마라톤 대열은 수많은 사람의 응원을 받으며 도심지를 벗어난다. 대구의 명소 수성못이 코앞이다. 못 주변에 늘어서 있던 벚꽃이 화사하게 반겨준다. 겨우내 막혀있던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잘 정비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뜨거운 함성은 우리의 발걸음을 한층 더 가볍게 한다. 대구가 이렇게 활력이 넘치고 멋있는 도시였는지 몰랐다며 광주 달림이 들은 엄지를 척 세운다.

솔직히 첫해엔 그들에 대한 선입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억양과 문화가 달라 우리가 과연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모든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달리기가 구심점이 되어 서로를 이끌어 주다 보니 마음은 저절로 따라왔다. 김광석 거리, 앞산 케이블카, 3호선 하늘 열차 등 빛고을 달림이에게 보여 주었다, 이번에는 대구의 속살인 근대골목 투어까지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하리라.

막걸리 한잔으로 완주의 기쁨을 같이 나눈다. 달과 빛이 함께라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영호남이 하나 되기 위해 우리 건각들이 먼저 앞장서서 달구벌에서도 빛고을에서도 땀을 쏟을 것이다. 오늘을 함께하며 흘린 땀방울 하나하나가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구의 속살을 보여주는 근대골목 투어를 끝으로 우리는 석별의 정을 나누며 “오월은 빛고을로!” 힘차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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