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제산 구름 자락 따라 오어지 거닐며 역사·설화 속으로 여행
봄 햇살에 반짝이는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며 일상에 찌든 마음을 씻고자 절집으로 들어간다. 저수지 주위를 산들이 감싸고 있어 수묵화처럼 펼쳐진 오어지는 물의 양이 무려 500만t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고 넓다. 그 넉넉함으로 천년 고찰 오어사를 고즈넉이 품고 있다. 소중한 수변 공간이라는 장소 덕분에 이 절집은 좋은 풍광을 사계절 간직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은 이곳에 일정 기간 머물며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가 머물렀던 군위 인각사, 양양 진전사지, 청도 운문사와 이곳 오어사까지 전부 물가에 있었기에 새로운 창의력이 샘물처럼 솟아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 만나는 최근에 세운 일주문을 지나면 오어사가 이내 눈에 들어온다. 오어지 둘레길을 걷기 전 준비 삼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자장암을 먼저 올라가 본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산봉우리에 위치한 삼면이 절벽인 암봉 꼭대기에 자리 잡은 암자이지만 150m 거리라 산자락을 따라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계단 초입부터 오랜 세월이 엿보이는 오어사 부도탑이 길을 안내한다. 잘 정비된 계단, 푹신한 흙, 나무뿌리, 돌계단이 번갈아 나오며 발바닥의 감각을 깨우고 걷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자장암에 올라 절벽 끝에 서서 눈앞에는 툭 터진 하늘이, 눈 아래에는 반짝이는 오어지와 운제산 자락 절벽 아래 자리한 절집을 내려다본다. 반달형 땅 위에 오어사가 있고 또 하나 초승달 모양의 호수가 절을 에워싸고 있는 절경이 펼쳐진다. 천 년 전 원효스님이 내려다본 풍경도 이와 같았을까. 관음전과 나한전을 거쳐 뒤편에 1998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놓은 세존진보탑이 있다.
오어사로 다시 내려와 본격적으로 오어지 둘레길을 걷기 위해 길이 118.8m 원효교를 건너간다. 주변 풍경을 살피며 건너면 곧바로 이정표가 보인다. 왼쪽 방향으로 진행한다. 오른쪽은 원효암 가는 길로 지난해 산사태로 폐쇄됐다. 활엽수와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가 함께 어우러진 울창한 숲길 사이로 진달래가 한창이다. 첫 갈림길에서 대골 방향으로 간다. 물과 길이 나란히 하는 둘레길을 걷노라면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화엄의 세계가 따로 없다. 길바닥 또한 부드러워 맨발로 걸어도 다칠 염려가 없을 정도다. 남생이바위 안내판에서 발길을 멈춘다. 남생이바위가 앙증맞게 수면 위로 올라와 자리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53호인 남생이는 우리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산비탈을 깎아 만들어 낸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짧은 길이지만 힘이 들 정도는 아니다. 삼거리 이정표 지나 곧바로 가면 메타세쿼이아 숲이 나온다. 팔각정자와 쉼터를 비롯한 여러 시설이 마련돼 있다. 여기서 잠시 오어사 창건 유래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오어사는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 있는 신라 진평왕 때 세운 절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절 가운데 몇 안 되는 현존하는 절이다. 자세한 창건 내력은 알 수 없지만, 신라의 네 고승(高僧) 원효(元曉·617~686), 자장(慈藏·590~658), 의상(義湘·625∼702)과 더불어 ‘신라 4성(聖)’으로 불리는 혜공(惠空·생몰연대 미상)이 수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웅전은 조선 영조 17년(1741)에 중건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 형식 팔작집으로, 천장이 화려하게 조각돼 있고, 정면의 꽃창살에 새겨진 국화와 모란이 그윽한 멋을 더한다. 1995년 11월 경북일보가 특종 보도한 저수지 준설 작업 중에 발견된 보물 제1280호 오어사 동종, 원효 대사 삿갓과 숟가락은 오어사 유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한국 불교 최고의 사상가인 원효 대사가 유일하게 한 수 가르침을 청한 이가 혜공이다. 원효가 여러 가지 불경의 소(疏)를 찬술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혜공에게 가서 물었다. 혜공이 말년에 지금의 오어사(吾魚寺)에 머물 때 일이다. 오어사에 대한 유래 일화를 소개하면 이렇다.
하루는 둘이서 계곡 상류에서 놀다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서로 법력을 시험하여 보고자 고기를 낚아 다시 살리는 재주를 겨뤘다. 그런데 둘의 실력이 막상막하여서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다가 딱 한 마리 차이로 승부가 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중 고기 한 마리를 놓고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주장하였다고 한 데서 ‘나 오(吾)’와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 절 이름이 ‘항사사(恒沙寺)’였다가 ‘오어사’로 바뀌게 된 유래로 알려져 있다. ‘항사’란 ‘갠지스 강의 모래알’이란 뜻인데, 불가에서는 ‘무한한 수’란 의미로 쓰인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1206~1289) 스님은 항사사란 절 이름에 “항하(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이 세속을 벗어났기 때문에 항사동이라 부른다”고 풀이한 각주를 달았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졸시 ‘그대 오어사에 와보셨나요’를 읽어본다.
그대 오어사에 와보셨나요
적바림에 잊고 있다
혜공이 원효를 만났다는
오어사 동종이 바람에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기운 빠진 여름이 풍경에
매달려 소리 공양 올리고
제비집 같은 자장암과
산 깊은 원효암에 올라
오어지가 보이는 법당에
인연이 물살로 흔들리면
산속 암자에 눌러앉아
그냥 쉬고 싶어집니다
원효와 혜공의 내공이
듬뿍 담긴 밥공양하다
산 물고기 가지고 서로
다툼했다는 아름다운 절
그대 오어사에 와보셨나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