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이 발칵 뒤집어 졌다. 선조는 낙향에 있던 정철을 다시 불러 우의정에 임명하고 정여립역모사건을 다스릴 위관으로 앉혔다. 동인의 탄핵을 받고 쫓겨났던 서인의 정치 거물 정철은 동인에게 복수혈전을 벌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장장 1년에 걸친 피의 숙청으로 동인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이후 서인과 동인은 돌이킬 수 없는 원수가 됐다.
기축옥사 희생자 중 가장 가혹한 화를 당한 사람은 동인의 영수 이발이었다. 이발의 가문은 어린아이들까지도 압슬형을 받고 한 집안이 멸문지화의 쑥대밭이 됐다. 정철과
이발의 악연은 소년 시절부터 시작됐다. 정철이 이발의 집에 들렀을 때 이발과 그의 동생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정철이 무심결에 훈수를 하자 이발 형제가 ‘역적놈의 자식이 시키지도 않은 훈수를 한다’면서 정철의 턱에 나 있는 수염을 모조리 뽑았다. 정철은 이 때의 일이 뼈에 사무쳐 이발의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앙갚음을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서인 측에서 꾸며낸 것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당시 이발 형제는 열 살과 여덟 살이었는데 18세 된 정철의 수염을 뽑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정철과 이발이 앙숙이 된 또 하나의 일화는 율곡 이이와 관련이 있다. 율곡의 간곡한 권유로 두 사람이 화합의 자리를 마련했는데 두 사람이 취중 논쟁을 벌이다가 정철이 이발의 얼굴에 침을 뱉은 불상사가 일어났다. 화합을 시도했던 자리가 앙숙을 악화시키고 말았다. 앙숙과 앙갚음이 얽힌 복수혈전은 떼죽음의 피바람을 몰고 온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치고 있다.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옥중 입장문’에서 ‘무술옥사’라고 했다. 어떻게 귀결되든 역사에 얼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