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 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
로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나는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겠다

전존재로 내지르는
피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점자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




감상) 나는 보지도 못했는데 그가 왔다갔다고 한다. 아직도 어디선가는 차마 떠나지 못하고 바람에 둥둥 밟히고 있다고 한다. 나는 막막하게 그를 불러보곤 한다. 내 말이 그의 층층 귀에 닿을 리도 없지만 내말이 그의 붉디붉은 귀에 안 들릴 리도 없지만·(시인 최라라)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