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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다. 정치, 산업, 교육, 사회, 국제, 안보 분야 등 모든 곳이 요동치고 있다.

대국적으로 보면 거대한 성장을 위한 아픔인지 또는 대통합을 위한 혼돈인지 몰라도, 우선 눈앞에 전개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불신과 질투와 모략이 횡행하고 있다. 16세기 영국의 토마스 홉스는 왕당파와 의회파의 싸움, 찰스 1세의 처형과 크롬웰의 철권정치를 보면서, 자연상태의 인간은 서로가 서로의 적(敵)인,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상태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인간을 복종시키는 국가권력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강력한 국가권력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할 수밖에 없는 불신과 투쟁의 상태에 놓여있다.

안 그래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정신적인 가치추구는 소홀해지기 쉽다. 옛말에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고 가난하고 추우면 도를 추구하는 마음이 생긴다(飽暖生淫心 飢寒發道心·포난생음심 기한발도심)’하였거니와, 화려한 상품들이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고 풍요로운 경제생활이 사람을 게으르게 한다.

욕망은 커지고 그 충족을 위하여는 금전이 필요하니, 황금만능주의가 성행하게 마련이다.

불신 풍조에는 공익신고포상금제도가 한 몫 한다. 란파라치, 쓰파라치, 의파라치 등등 별별 신고제가 다 있는데 공익을 위하여 법률이 엄격히 시행됨을 보장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그 부작용이 크다. 자연스러운 시민 생활 속에 포착되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타인의 불법행위를 고발하는 것은 시민 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포상금을 좇아 위법행위를 찾아다니는 직업적인 파파라치가 등장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마치 헌혈은 선행이나, 소중한 혈액을 사고파는 것이 금지되듯이, 고귀한 시민 정신을 금전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이 제도는 서로가 감시하고 고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여, 국가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믿음’이란 덕목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조직 내부의 고발도 그렇다. 매일 만나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일하면서 고발하고 투서를 넣는 것은 불가피한 최소한에 그쳐야지 권장할 사항은 아니다. 서양식 합리주의만 조직경영의 작동원리는 아니다. 조직과 사회를 움직이는 요인에는 다소 불합리하게 보이는 인정(人情)과 신뢰라는 심리요소도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발전하면 애사심(愛社心)이 되고 애향심이 되며 애국심이 된다. 그리하여 보상과 관계없이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의인(義人)과 열사(烈士)가 나타나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의 존립에는 신의(信義)가 기본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면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고 정의롭지 못하면 국가가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여기에 현대사회는 대중매체의 비중이 크다.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활동하는 언론 방송이나 누리소통망(SNS)은 여론을 선도하는 위치와 책무를 지니기 때문이다. 지금 드루킹이라는 사람의 댓글조작으로 세상이 소란하다. 이 터무니없는 일이 가능한 제도적 기술상의 문제와 도덕관념에 문제가 있다. 이로써 우리 사회는 더욱 불신과 모략이 가득한 장소가 되었다. 정부와 온라인을 관장하는 기관에서는 책임을 통감하고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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