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선 포항세명기독병원장
우리나라는 의료 자원의 지역 불균형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의사의 숫자만 비교해 보아도 서울은 인구 천 명당 2.8명의 의사가 활동하고 있는 데 반해 경북은 전국 최저 수준으로서 인구 천 명당 1.3 명의 의사만이 활동할 뿐이다. 게다가 이 차이는 앞으로 개선될 전망이 보이기보다는 점점 더 악화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모든 자원이 수도권으로만 집중되는 이 현실에서 의료인만 균형 있게 배치되기를 바라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가 될 것이다.

의료는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속한다. 그것도 가능한 한 최고 수준의 의료를 받을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의료 인력이 모두 수도권으로만 몰려가는 이 현실은 우리 지역 의료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 지역이 날이 갈수록 의료 취약 지역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의료인의 확보와 총체적인 의료 수준의 향상은 단순히 어느 한두 병원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 내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에서의 충분한 의료인의 공급, 체계적인 의료인의 훈련, 그리고 잘 훈련된 의료인들을 지역 내에 정주시키기 위한 정책적인 배려 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내 의과대학의 설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 소멸시대 이전에 먼저 도래할 지방 의료소멸 시대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 지역의 의과대학 신설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구 50만이 넘는 도시 중 의대 또는 대학병원이 없는 곳은 포항이 유일하다. 또한 포항에는 의대뿐만이 아니라 치과대, 한의과대, 약학대 등도 전무하다. 그 결과 포항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사, 치과의사, 약사 등은 타지에서 와야만 하는 실정인 것이다. 이에 반해 포항보다 훨씬 작은 도시들인 춘천시, 익산시, 원주시, 진주시, 제주시 등에는 이미 의과대학들이 설치되어 지역의료인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다. 사실 경주에는 의과대학이 설치는 되어있으나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병원 때문에 지역 의과대학이라기보다는 수도권 의과대학 역할을 주로 하고 있어 경북 지역 의과대학 신설 명분만 없애고 있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명실공히 지역을 위한 의과대학이 필요하고, 이 경우 경북 지역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도시인 포항에 반드시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인의 정원 문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많은 토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추계에 따라서는 의사가 남아돈다고 하기도 하고 의사가 턱없이 모자란다고 하기도 한다. 의료 행위의 총량은 질병의 추이에 따라, 시대에 따라, 정책에 따라 큰 폭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추계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시대에 인공지능이 의사를 어디까지 대체할 것인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또 이걸 미리 예측하여 현재 시점에서 20년 후의 의사의 정원을 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정책 입안자들이 의과대학 신설에 부정적인 입장에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나 의료인의 수도권 집중과 지방 기피 문제는 의과대학 정원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100세 시대에 지방에는 의료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노인 인구가 넘쳐나는데 이들을 돌보고 치료해 줄 의사는 모두 서울에 가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언제까지 방치하려 하는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전체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어렵다면 수도권 의과대학 정원을 줄여서 지방대학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면 될 일이다. 그리고 지방 도시 중 의과대학이 없는 도시로서는 제일 큰 도시인 포항 같은 지역에는 의과대학을 설립해 주어 지방 의료인 양성 임무를 맡기고, 지방 의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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