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
나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감상) 배고플 때는 마트에 가지 말아야한다. 그걸 알면서도 오늘은 딱 그 순간에 마트에 들어갔다. 평소에 작정한 절제를 놓치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사이렌이 내 손을 끌어당겼다. 나는 거절을 잊어버린 고무풍선이었다. 누군가 위험해, 소리치지 않았다면 나는 터지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부끄러워 폐선이 되고 싶었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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