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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성일 편집부국장
한반도의 남과 북, 이념의 긴 터널을 지나니 사월의 봄 햇살이 쏟아졌다.

햇살은 생명이 움트는 대지와 임진강 비단 물결에 부딪혀 옥구슬처럼 눈부시게 부서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내 온 세상이 환해졌다. 싱그러운 봄의 절정인 이날, 남과 북에서 이념의 큰 산맥들이 뚜벅뚜벅 판문점 통일의 집으로 걸어왔다.

마침내 ‘한라’와 ‘백두’가 만났다. 태백산맥과 묘향산맥도 하나로 연결됐다. 이념의 완충 구역, 비무장 지대 DMZ가 연결고리였다.

한반도 분단 이후 인간의 발걸음이 끊어진 비무장지대 자연의 아름다움은 최전방 철책사단에서 군 생활을 해본 사람은 모두가 공감한다.

철책 너머로 보이는 광활한 숲과 대지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대지와 숲은 이념의 대결구도로 긴장된 인간의 숨결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름 모를 호수와 강가엔 아침 일찍 물을 마시러 오는 노루의 순박하고 천진한 눈망울을 마주한다.

물 위를 스치듯 비상하는 새들의 군무, 그리고 셀 수 없을 정도로 제각기 피어난 야생화들의 향기는 인간의 마음을 단숨에 정화 시키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분단의 세월이 비무장지대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창조했다.

이념의 경계지대에서 어느 쪽 치우침 없는 무공해 자연이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이념을 하나로 이어준 것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산과 자연이 이산가족 상봉을 했다. 잠시 끊어진 핏줄이 이어져 한반도가 생기를 되찾았다.

드디어 한반도 자연은 기지개를 켜며 봄의 기운을 듬뿍 받았다. 용트림하며 절정을 향해 치닫는 순간을 맞이했다.

서로 헤어진 시간이 70여 년, 한치의 쭈뼛거림도 없었다. 당당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별의 시간은 순식간에 찰나가 됐다.

저마다 봄을 잔뜩 머리에 이고 왔다. 그 봄은 다르지 않았다. 남과 북의 ‘봄’은 ‘다른 봄’이 아닌 ‘같은 봄’이었다. ‘하나의 봄’이 사월의 눈 부신 햇살과 하나였다. 이념은 봄 햇살에 그림자를 남기지 못했다. 연둣빛 봄, 새 생명의 빛들이 대지를 가득 채웠다.

역사적인 4·27 남북정상회담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날이 남과 북의 이념 굴레를 벗어던지고 대륙과 대양을 향해 포효할 순간이 되기를 기대하며 꿈꾸듯 상상을 해봤다.

이념은 인간이 만든 한낱 ‘생각의 굴레’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껏 그 생각에 속고 살아온 것이다.

생각이란 환상과 같은 것. 제각기 ‘자유’와 ‘평등’을 지상의 최고의 가치라 여기며 달려왔다. 자유와 평등은 ‘쟁취’였다. 빛깔이 다른 ‘혁명’을 필요로 했다.

달려온 길은 달랐지만, 목적은 하나였다. 이념은 인간이 행복에 효율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인간에 의해 설계됐다. ‘좌’와 ‘우’, 그리고 ‘남’과 ‘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행복 추구방식이 서로 다르다고, 내 방식만 ‘옮음’이고 ‘선’이라는 생각을 이제는 초월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가 된 것이 아니고 ‘본래 하나’였다.

5천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가 고작 70여 년의 짧은 분단의 기억으로 미래를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긴 역사에 비추면 찰나에 불과한 분단의 시간을 이제는 털어내야 한다. 남과 북은 제각각 지구촌에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이날 우리는 예전과 같이 ‘본래 하나’가 돼야 한다. ‘동방의 등불’이었던 한반도가 ‘동방의 태양’으로 떠올라 세계를 이롭게 할 날도 멀지 않았다.

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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