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나는 오늘 지루한 사막을 가득 메운 모래가 아니다

백자의 비명, 귀가 자라 작년의 소리를 듣는 나는 그러나 로비가 아니다

잘 지내느냐고, 차마 물어볼 수 없는 낙엽의 손끝은 나이테가 아니다

객실은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둔 무기력이 아니며, 혹은 끝없이 자라나는 허공도 아니다

일단 새들은 내가 아니다 바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심정으로 나는

나무 꼭대기에 걸린 단 하나의 죄에 대해 읍소했지만, 사실 그것도 詩는 아니었다

그러나 저기서 하룻밤 묵어가는 별이 미쳐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므로

너무 작아서 너에게 가 닿지 못한 내 목소리가 내일의 모래는 아니다

나무 호텔은 나무도 아니고 호텔도 아니다 아닌 것들의 밤이 넓고 유순하다





감상) 때 아닌 비바람이다. 며칠 여름 같은 무더위가 지나간 이후다. 창밖으로 보이는 소나무들이 미친 듯 흔들린다. 정말 미친 듯이… 막연히 저 흔들림에 편승하고 싶다. 저 나무위에 신발을 벗고 누우면 언젠가 지진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흔들어 줄 것 같다. 대책도 없이 흔들리던 그 어떤 때가 그립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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