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은 조선조 왕들 중에 명군 반열에 들 정도로 훌륭한 군주였다. 형인 월산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성종은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빼앗은 할아버지 세조에 대한 콤플렉스로 자신은 성군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했다. 성종은 세조가 없애버린 집현전 대신 홍문관을 설치하고 정치제도와 원리를 연구토록 해 법치확립에 매진했다.

자기를 “폭군이라고 해도 좋으니 간언을 서슴지 말라”고 하면서 신하들의 간언을 잘 받아들였다. 대신들은 왕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전하, 아니 되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서슴없이 간언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대신들의 간언이 도를 넘어 심한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다리가 셋 달린 닭이 태어나 온 나라에 뒤숭숭한 소문이 나돌았다. 대신들은 “이런 괴이한 일은 왕이 여자의 말에 넘어갔을 때 생긴다”며 시끄러웠다. 성종은 “내가 여자의 말을 들은 일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성종은 화가 났지만 “그래, 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괴이한 일은 내가 덕이 없어 일어난 일이다” 자인 했다.

창경궁 통명전 앞의 샘물이 넘쳐 연못을 만들어 물을 끌어들이는 공사를 했다. 그런데 물을 끌어들이는 물길인 수통을 청동으로 했다. 대신들은 수통을 구리로 만드는 것은 “사치스럽다”며 “아니 되옵니다. 통촉하옵소서”를 쏟아냈다. “나무로 하면 금방 썩고, 돌로 하면 만드는 데 힘이 들어 구리로 했다”며 대신들을 타일렀지만 대신들은 보름이 넘도록 그 문제를 갖고 물고 늘어졌다. 성종은 할 수 없이 다 만들어 놓은 구리수통을 걷어내고 돌로 다시 만들었다. 이처럼 절대군주제의 왕이라 할지라도 대신들의 터무니 없는 트집도 무시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더욱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사림파들의 정계 진출로 성종은 국정 수행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방통행 폭주정치를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그침 없이 다 하고 있는 것처럼 비추어져 왕권을 능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표리부동한 처신으로 금융감독원장에서 낙마한 인사실패는 대통령의 코드 일변도 폭주정치의 동티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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