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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환 전 의성공고 교장
요즈음의 벼농사는 농기계의 발달로 가장 쉬운 농사라고 하는데 지난 시절에는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일이 벼농사다. 그래서 쌀 미(米)는 팔+팔(八十 八)로 된 글자로 쌀을 생산하는 벼농사에는 손이 88번 간다는 뜻이 담겼다는 말이 있다. 요즘에는 쌀값이 폭락하여 보잘것없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살림에 가장 소중한 것이 쌀이다. 천석꾼 만석꾼은 한해의 농사로 추수하는 곡식의 양으로 일러진다.

지난 시절의 힘들었던 한해의 벼농사는 봄에 벼 논의 물갈이부터 시작된다. 소 쟁기로 무논을 갈아 다 벤다. 무논에는 아이 갈이 전후에 거름을 넣는다. 봄이 무르익어 풀이 자라고 나뭇잎이 피어나면 ‘갱자리를 캔다’고 하여 봄풀을 낫으로 베고 호미로 캐서 논에 넣고 산이나 들에 어린 새잎이 돋아난 작은 나뭇가지를 베어다가 논에 넣어 거름이 되게 물을 넉넉하게 채운다. 며칠이 지나면 논의 물이 검스름하게 되고 논흙이 검게 된다. 이것이 아주 좋은 벼농사의 밑거름이 된다.

처음 논을 가는 것이 아이갈이고, 모심기 전에 한 번 더 가는 것이 두벌갈이다. 두벌갈이한 논은 써레질을 해서 흙을 부드럽게 한 후에 모심기한다. 논갈이나 써레질은 모두 소의 힘으로 한다. 농사에 꼭 있어야 하는 소가 고맙다.

5월 중순쯤에는 못자리를 만든다. 논에 물 대기가 좋고 토질이 좋은 논에 못자리를 만든다. 마른 볍씨를 물에 며칠 담가서 싹이 나기 시작하면 못자리에 뿌려서 모를 기른다. 이때 어린 모에 섞여 같이 자라는 잡초를 뽑아주는 일이 쉽지 않다. 잡초 중에 가장 뽑기 어려운 것이 피다. 피는 그 모양이 벼포기와 아주 많이 닮아서 가려내는 일이 참 어렵다. 잎맥이 좀 넓고 투명한 것을 찾아내어야 한다. 피는 뿌리가 굵다. 이렇게 벼의 모를 키우는 데는 못자리 논이 있고 밭에서 벼의 늦모를 기르는 ‘건모밭’도 조금 있다. 건모는 수확량이 조금 떨어지는 관계로 재배가 많지 않았다.

못자리에 볍씨를 뿌려 약 한 달 정도 키워 6월 20일경에 벼가 25cm가량 자라면 모를 찐다고 하며 못자리에서 모를 뽑아 옮기기 쉽게 볏짚으로 한 춤씩 묶어서 모춤을 만든다. 모춤은 못자리의 무논에서 건져 논둑에 한참 두어 물이 빠지면 바소쿠리(발채)를 얹은 바지게에 담아 지고 모내기 논으로 옮겨 모심기 준비를 한다.

두벌갈이를 하고 10여 일이 지난 논을 써레로 갈아 논흙을 부드럽게 하여 모내기를 한다. 모내기는 여러 사람이 일렬로 옆으로 줄지어 서서 못줄의 눈금에 맞추어서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는다. 20~25cm 정도의 간격으로 심는다. 3~4포기 정도의 벼포기를 모아서 모심기한다.

빨간 헝겊으로 눈금을 표시한 못줄을 마주 보는 논둑에서 두 사람이 맞잡고 모심기 작업 속도에 잘 맞추어서 못줄을 옮겨주어야 한다. 못줄을 옮길 때는 맞잡은 두 사람이 큰 소리로 “오라이” “자” 등 소리를 질러서 손을 맞추어 사뿐사뿐 뭇 줄을 옮겨야 한다. 이렇게 못줄에 맞추어 직선으로 심는 것은 ‘논매기 기계’로 논매기를 쉽게 하기 위해서다.

모심기 때 못줄을 대는 일은 직접 모심기를 하는 일에 비하면 훨씬 쉬운 특과다. 모심기에 제일 힘 드는 것이 꾸부려 모를 심는 동안 허리가 아픈 일이다. 일 년 중 모내기 때가 제일 바쁘고 힘 드는 시기이라서 초·중·고 학교에서는 ‘농번기 휴가’라 해서 보통 일주일 정도 모내기 방학을 해서 가정에서 바쁜 일손을 돕게 한다.

또 각급 학교에서는 학교수업 중에도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 사전 예약을 받아서 모내기 일손돕기 봉사활동도 나간다. 일손돕기의 어떤 날은 논 주인이 삶은 감자나 뽑은 밀 같은 간식을 학생들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 날은 학생들이 힘은 들지만, 신이 나는 날이다.

포항·경주 지방에서의 모내기 시기는 하지 전 3일, 후 3일이라 해서 6월 20일경 하지 전후 약 일 주일간이 모내기 적기로 ‘올 모심기’라 하고 좀 늦은 모심기는 ‘늦 모심기’이다. 늦모는 밭에서 기른 건모를 심는다. 보리를 베어낸 밭에 건모를 심어 이모작 농사를 짓는 것이다.

모심기 후 15일 정도 지난 7월 5일경에 아이논매기를 해야 하고 7월 말경에는 두벌논매기를 해야 하고 8월 중순께에는 3벌 논매기를 해야 한다. 논매기는 논에 엎드려 맨손으로 논바닥의 풀을 긁어서 논흙에 묻는다. 맨손으로 논매기할 때는 팔의 맨살 혈관이 벼 잎사귀에 긁혀서 까만 닦지가 생긴다. 요즈음 같으면 낡은 스타킹을 잘라서 팔에 끼우면 될 것인데 그 시절은 그것이 없었다. 낡은 스타킹은 다리에도 끼우면 거머리도 막을 수 있는데도 그 당시는 나일론 스타킹이 아예 없다. 거머리가 맨다리에 붙어서 빨판으로 피를 빨아 먹는다. 깜짝 놀라 거머리를 떼어낸다. 잘 떨어지지 않는데 억지로 떼어내면 피를 빨던 자리에서 피가 바로 멎지 않고 한참 동안 계속 흘러내러 온 다리가 붉은 피로 덮인다.

이런 어려운 논 매기도 논매기 기계가 만들어져서 좀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서 두 손으로 밀고 가는 수동 논매기 기계가 나온 것이다. 쇠갈고리 바퀴 두 개를 앞뒤로 붙이고 긴 자루를 달아 벼포기 시이의 공간으로 주르륵주르륵 밀고 나가서 쇠갈고리가 논바닥 흙을 긁어서 잡풀이 흙에 묻히도록 한다. 논매기가 끝나는 늦여름의 시기에는 벼가 왕성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논바닥이 안 보일 정도가 된다. 농부는 벼 가꾸기의 힘든 큰일을 거의 마치고 조금 한가한 시기가 된다. 곧 벼가 패고 영글어가는 가을을 바라보는 행복한 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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