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분계선 허물고 대결 대신 대화로…판문점 선언, 평화 싹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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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평화와 공동 번영과 민족 염원인 통일을 우리 힘으로 이루기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오후 평화의 집에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후 가진 선언문 발표식에서 새로운 한반도의 출발을 알렸다.

27일 오전 9시 30분 군사분계선(MDL) 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찰나였지만 그 맞잡은 두 정상의 손은 한반도에 겹겹이 쌓인 분단과 대결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뗐다.

이날 판문점에서 이뤄진 모든 순간은 분단 이후 최초로 기록됐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MD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자체도, 국군 의장대도 사열도 처음이었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관리할 남북한의 통일·외교업무 수장 뿐 아니라 국방장관과 야전군 사령관까지 총출동해 남북 양 정상을 수행함으로써 평화 구축 의지를 뒷받침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날 서로 오간 군사분계선은 무의미해졌고 판문점에는 대결 대신 대화가 자리 잡았다.

두 정상은 오전 10시 15분부터 각각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만 배석시킨 채 100분간의 회담을 한 데 이어 오후에는 친교를 위해 도보다리를 산책하면서 배석자 없는 사실상의 ‘단독 회담’을 30분간 가졌다.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개 장 13개 조항으로 이뤄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여기엔 남북관계와 군사적 충돌방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비핵화 등 불안정한 평화를 종식하고 항구적 평화를 싹 틔우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선언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며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된 것이 골자였다.

남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합의한 것은 1992년 1월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후 26년 만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당국회담 개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방안, 8·15 이산가족 상봉, 민간 교류 활성화 등을 담았다.

사실 남북 간에 유의미한 내용을 담은 합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7·4남북공동성명, 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다양한 합의가 있었지만 이행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는 늘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따라서 합의를 이행해 달라진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앞으로 남북간에 남겨진 과제가 됐다.

전망은 긍정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적인 이런 자리에서 기대하는 분도 많고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발표돼도, 그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이런 만남을 갖고도 좋은 결과에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더 낙심을 주지 않겠나”라고 반문하며, 회담 합의 이행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정기적 회담과 직통전화로 수시로 논의하겠다”고 말해 앞으로 판문점 선언의 이행상황을 남북 정상이 직접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해 합의 내용의 중간점검을 할 전망이다.

이 합의가 이행되면 한 해에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핫라인까지 어우러지며 양 정상간 긴밀한 소통채널을 갖추게 돼 정상이 직접 챙기는 남북관계가 가능해졌다.

선언을 이행할 국제적 환경 조성도 과제다. 특히 현 한반도 정세에 대한 미국의 평가와 태도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행스럽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과 관련해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한국전쟁이 끝날 것이다!”라며 “미국과 모든 위대한 미국인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매우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심복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며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해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가 인준 절차 및 취임 선서를 마치고 70대 국무장관으로 취임하게 됐다.

오는 5월∼6월 초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비핵화와 관련해 남북정상회담에서 원칙적 합의가 이뤄진 데 이어 구체성이 담긴 비핵화 로드맵이 만들어질지 주목된다.

한반도는 이번 정상회담을 필두로 5월 한미정상회담→5월∼6월 초 북미정상회담→6월 북중정상회담을 이어가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분주한 외교를 이어갈 전망이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출발을 알린 남북 정상의 만남은 27일 오후 기념식수와 환영 만찬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남북의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참석해 만찬은 완전체가 됐다. 여기에 평양의 옥류관에서 파견된 요리사가 만든 평양냉면과 김대중 전 대통령 고향인 신안 가거도의 민어해삼 편수,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의 유기농 쌀밥, 문 대통령이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의 달고기구이 등 남북의 요리가 화합의 식탁을 마련했다.

군사분계선 위에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는 소나무 기념식수에서는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함께 섞어 사용하고 식수 후에는 김정은 위원장은 한강수를, 문재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골고루 뿌렸다. ‘합토합수’가 이뤄진 것이다.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만찬과 식수를 통해 대립과 반복을 밀어내고 화해와 화합을 향해가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김 위원장과 나는 이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되었다”며 “이제 이 강토에서 사는 그 누구도 전쟁으로 인한 불행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남북한이 힘을 합쳐 평화를 지켜나갈 것을 확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만찬 답사에서 “이 땅의 영원한 평화를 지키고, 공동 번영의 새 시대를 만들어 나가려는 나와 문재인 대통령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의지에 달렸다”며 “우리가 서로 마음을 합치고 힘을 모으면 그 어떤 도전과도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꼭 보여주고 싶으며, 또 보여줄 것”이라고 화답했다.

만찬을 마친 김정은 위원장은 환송행사를 마치고 다시 북쪽으로 돌아갔다. 이제 이행이 남았다. 하지만 한반도에 평화를 심겠다는 양 정상의 의지가 공고하기에 차후 남북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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