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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경북을 걷다] 3. 청송의 보석 같은 신성계곡 녹색길

징검다리 건너 기암괴석 아래 서면 지구 탄생의 역사가 성큼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등록일 2018년04월29일 17시46분  
청송 신성계곡 녹색길 징검다리
신록이 짙어지고 있다. 혹한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꽃들이 다투어 피고 산과 들엔 온통 초록 물결로 가득한 몽환적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사람 소리보다 물소리, 새소리, 초록이 건너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름난 산이나 유명한 행락지는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풍광만큼은 빠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갖춘 곳이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고와리까지 걷는 신성계곡 ‘녹색길’이다.

‘녹색길’은 안동시 길안면으로 이어지는 길안천(川)을 따라 나 있다. 청송을 상징하는 과일을 생산하는 사과밭, 징검다리, 자연적 숲길, 인공적 농로, 갈대숲, 독특한 형상의 바위와 지형을 보며 걷기에 지루할 틈이 없는 길이다.

▲ 청송 신성계곡 징검다리
이 길을 따라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청송의 지질특성을 보여주는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청송국가지질공원에는 24개의 지질명소가 있는데 주왕산 국립공원에 10개, 신성계곡에 4개가 있지만 그 생김새와 규모가 모두 다르다. 특히 독특한 지질과 풍경의 주왕산 국립공원을 당당히 제치고 청송 8경 중 제1경에 오를 만큼 경관이 빼어난 곳이 바로 신성계곡이다.

청송 신성계곡 녹색길 징검다리
신성계곡 녹색길에는 4개의 지질 명소인 방호정 감입곡류천, 신성리 공룡발자국화석, 만안자암 단애, 백석탄 포트홀이 있다. 지질탐방로는 총 3개 구간으로 나늬었고, 9개 소규모 주제에 맞는 길 이름을 각각 붙어주었다. 12㎞ 거리로 천천히 쉬면서 걸어도 4시간 정도면 끝낼 수 있다.

방호정과 감입곡류천 전경
신성리공룡발자국화석
△기암 단애 위에 지은 방호정, 공룡발자국에 감탄사 절로

1구간은 안덕면 신성교 청송보현요양원에서 방호정 지나 헌실 쉼터에 이르는 산수과수원하천길로 4.2㎞거리다. 청송보현요양원을 출발해 처음 만나는 신성계곡 녹색길 안내센터는 청송국가지질공원 학습관을 겸하고 있다. 이곳에 들러 청송군 지질명소에 대한 설명은 물론 다양한 자료를 구할 수 있다.

찾아갔던 날 장연실 해설사를 만나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안내센터에서 나와 방호정으로 향하는 길은 벚꽃이 한창이었다. 맞은 편에 보이는 방호정과 퇴적암 절벽은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암석이 잘게 부서져 생성된 퇴적물이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지층의 변동-융기-침하로 인해 현재 모습 같은 단애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신성계곡 녹색길 안내도
방호정교 입구에 올라서면 방호정 감입곡류천 안내판이 보이고 신성리 공룡발자국 화석 안내판은 보이지 않는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한 산사태로 사면이 깎이면서 공룡 발자국 400여 개가 발견된 곳이 신성리 공룡발자국이다. 발이 큰 초식 공룡과 날렵한 육식 공룡이 걸어 다닌 흔적을 가까이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1억 년 전 살았던 공룡 발자국으로 추정하는데 단일 지층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한다. 이 곳을 가려면 방호정교 건너기 전 포장도로를 따라가거나 방대슈퍼 뒷길 계단을 통해 갈 수 있다. 시간을 내어 꼭 보고 가길 권한다. 신성리 공룡발자국 화석 안내판을 빠른 시일 내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신성리 공룡발자국화석을 천천히 둘러보고 내려와 방호정교를 건넌다. 방호정(方壺亭)은 조선 시대 조준도가 어머니 묘를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며 문안 인사를 올리기 위해 1619년에 지은 건물이다.

방호정 솔밭 쉼터를 돌아가면 어릴 적 추억을 경험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나온다. 비가 많이 내린 탓인지 신발을 벗고 건넌다. 앞에는 자생회양목군락지가 있는 암벽이 가로 막고 있다.

회양목은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로 봄철에 꽃을 피운다. 척박한 바위 위에 뿌리내리고 단단하게 자라기에 도장이나 바둑알 재료로 쓰이고 있다. 검은 바위와 초록이 어우러진 형상이 고스란히 물에 반영된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조준도가 이곳에 방호정을 지은 것도 이 같은 풍광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피안(彼岸)의 세계로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질 것 같다.

사과밭과 나란히 하는 콘크리트 농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징검다리를 건너자 수달 배설물로 추정되는 물체가 돌에 보인다. 길안천 왼쪽을 따라 걷는 참나무 숲길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건너편 군도 15호를 바라보며 걷다 모퉁이를 돌아가면 오르막 산길을 만난다.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사람과 물자가 오갔던 중요한 길이다.

신성계곡 녹색길 안내도
조금 올라가면 ‘신성계곡 한반도 지형’안내판이 있다. 한반도 지형을 한 곳이 전국에 몇 군데가 있다. 영월 선암마을, 정선 상정바위산, 옥천 돈주봉, 정선 병방산, 영동 월류봉으로 신성계곡도 이 중 한 곳이다.

숲 속에 들어와 있으니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 지형을 찾아볼 수 없다. 길안천 건너 맞은 편 탕건바위에 올라야 볼 수 있다는 설명을 추가로 부착해야 할 것 같다.

백석탄 포토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붉은 단애, 자암

2구간은 갈대봇도랑길로 헌실 쉼터를 출발해 반딧불농장까지 가는 2.9㎞의 짧은 거리다. 사과밭과 길안천 사이로 난 콘크리트 농로를 걷는다. 나무 그늘이 없어 한낮에는 걷기가 힘들 것 같다. 헌실교를 건너지 말고 곧바로 가면 청송의 대표적 돌로 알려진 꽃돌 징검다리를 만난다. 이 일대는 갈대숲을 이루고 있어 늦가을에 오면 좋을 것 같다. 작은 개울을 뜻하는 봇도랑이 종종 보인다. 헌실, 논실, 두들막 같은 옛마을 이름이 정겹다. 길안천은 겉으로 보기에 맑아 보이지만 오염되어 가고 있어 특별한 관리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낙석위험 지역을 지나자 신성계곡 절경 가운데 백석탄 포트홀과 더불어 첫째를 다툰다는 만안자애 단애인 자암(紫巖)이 나타난다. 붉은 바위를 뜻하는 자암은 적벽 또는 병풍바위라로 부르고 있다. 이 자암은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으로 오랜 세월 동안 물이 흐르며 바위 벽면을 깎아내어 현재와 같은 단애를 형성했다고 한다. 높이 50m, 길이 300m로 청송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고 철분 함유량이 많아 유독 붉게 보인다고 한다. 바위 위쪽에는 푸른 잎과 붉은벽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길안천과 노래천이 만나는 새마을교 아래에 규모가 큰 야영장이 만들어져 있고, 해마다 8월에 다슬기축제가 열린다. 새마을교 아래 작은 징검다리를 건너 930번 지방도로로 올라와 새마을교를 건너며 바라본 자암 단애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소교 까지 곧장 가면 2구간이 끝나는 반딧불농장에 도착한다. 지소리 마을 주민들의 시원한 여름나기 지혜가 담긴 ‘푸질’이라는 마을공동체 놀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백석탄 포토홀
△호젓한 숲길 따라 걸으며 마주하는 기암괴석

마지막 3구간은 반딧불농장에서 묵은재휴게소까지 맑은 물과 나무그늘 숲을 걸으며 기암괴석을 볼 수 있는 4.7㎞ 백석탄길이다. 길안천과 사과밭 사이로 난 길이 끝나면 지소리 돌보라는 제법 긴 징검다리를 건넌다. 큰 돌을 잘 다듬어 만들었다. 모퉁이를 살짝 돌아가면 규모가 큰 사과밭 사이로 난 농로를 걷는다. 가을이면 붉은 사과가 ‘어서 와’ 하고 반겨줄 것 같다.

구덕교 가기 전 왼쪽 둑길을 따라간다. 신성계곡 녹색길 중 인공적으로 설치한 목책교(데크) 대신 자연 그대로 만든 매우 돋보이는 숲길이다. 길바닥이 고르지 못해 주의해서 걸어야 한다. 숲에 가려 백석탄의 진면목을 볼 수 없고 건너편 도로에서 보아야 볼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명품 남근석이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 든 생각은 그 자리에서 실제 볼 수가 없고 시대적으로 적합하지 않아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계곡 백미인 백석탄 포트홀이 모여 있는 1㎞ 구간에 하얀 바위가 독특한 자태로 뽐내고 있다. 석영과 장석의 함유량이 많아 바위가 밝은색을 띄는데 종종 포트홀(Porthole)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포트홀이란 오랜 세월 물과 모래가 소용돌이 치면서 바위에 만들어낸 구멍이다.

백석탄 포토홀
이밖에 줄무늬 셔츠처럼 무늬가 확연한 ‘층리’, 바위가 굳기 전 생물체가 지나간 흔적이 또렷한 ‘생물교란구조’ 등을 볼 수 있다는데 전문가가 아니면 찾기 어려울 것 같다. 한마디로 살아있는 암석 자연 교과서다. 지질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 모두가 백석탄 모습을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하얀 돌이 반짝이는 여울’ 이라는 뜻과 바위 때깔이 고와서 마을 이름도 고와리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응척 장군이 전투에서 패하고 이곳에 도착해 잠에서 깨어나서 본 백석탄 비경이 천당 같아 놀랐고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위도 곱고 사람 마음도 고와서 고와리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백석탄 포트홀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걷다 끝나는 지점에 고와리 잠수교가 나타난다. 처음 녹색길을 낼 때는 이 과수원을 통과해 징검다리를 건너 고와1교 아래로 갔지만 지금은 과수원으로 가지 못하고 고와리 잠수교를 건너 도로 따라 걸어서 고와1교까지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탐방객 안전을 위해 새로 길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니 길도 변하고 길 이름도 바뀌며 진화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로 위를 걷다 보면 과수원으로 난 옛길과 징검다리를 볼 수 있다. 처음 낸 길로 갈 수 없는 것은 야생동물로 인한 농가 피해를 막기 위해 철조망을 쳤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고와리 도예촌가마터 지나 고와1교 아래 오른쪽 둑길 역시 그늘이 없다. 마지막 징검다리를 건넌다.

바위 절벽을 보고 돌아가면 청송과 안동 경계인 고와2교와 솔고개 목은재 휴게소에 도착하면 신성계곡 녹색길이 끝난다. 휴게소는 문을 닫은 지 오래된 듯 하고 차를 주차할만한 공간이 없어 주차장을 조성해야 할 것 같다. 비가 많이 왔다면 신성계곡 녹색길 안내센터(054-873-5116)에 미리 알아보고 갈 것을 권한다. 일반 대중교통편을 이용해 접근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탐방로 곳곳에 버스 운행 시간표를 설치해 놓았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이 길을 걸으며 느낀 것은 인공적으로 설치한 데크보다 생업을 위해 만들어진 농로와 숲길, 드넓은 사과밭, 잠시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징검다리가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라면 그런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유산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질천국’이기 때문이다.

공룡이 뛰어놀고 용암이 분출해 만들어진 그 어디에도 볼 수 없는 특별한 계곡이다. 이 길을 걷고 나면 독특한 풍광에 매료되어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은밀하게 사람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천천히 사유하며 걸어볼 일이다.
▲ 글·사진=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귀 기울여 들어라. 그런 다음 네 심장이 뛰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라. 네 발자국이 대지 위에 내는 소리를 기울여라. 이 대지는 커다란 북이다. 너는 그 북소리를 잘 내고 있느냐.” 아베나키족 작가인 부르차크의 글이다. 대지가 내는 모든 소리와 나를 향해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바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임을 꽃잎이 피고 지는 봄날에 새삼 깨닫는다. 봄이 이렇게 오고 가는 시절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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