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청산·새로운 화해의 시대 위한 상징적 의미"
김 전 대통령에 학위수여 제안…'실사구시' 친필 휘호로 화답

▲ 우동기 대구시교육감
2006년 3월 21일은 한국 정치사에서 매우 뜻깊은 날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서 모진 정치적 탄압을 받아 죽음의 문턱까지 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에게 화해의 손을 내민 날이어서다. 박 전 대통령이 ‘주인’인 영남대학교에서다.

영남대 통일문제연구소와 함께 ‘동서화합과 새로운 화해의 시대를 열기 위한 프로젝트’를 2005년 7월 마련해 김 전 대통령 모시기에 나섰고, 마침내 이를 성사시킨 이는 우동기 당시 영남대 총장이었다. 지금은 대구시 교육감이다.

우 교육감은 “2005년 7월 25일 김 전 대통령이 우리 대학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는 게 곤란하다는 답을 들었고, 9월 14일 동교동 사저로 찾아가 학위수여 제안 배경을 설명드렸다”면서 “과거의 어두운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동서화합의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6년 3월 21일 우동기 당시 영남대 총장(왼쪽)에게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있다. 경북일보 DB.
그는 “영남대는 옛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통합으로 1967년 설립된 후 1970년에 유급연구원을 둔 통일문제연구소를 국내 최초로 만들어 통일문제 연구를 활발히 했고, 조선대와 원광대 등과 동서화합을 위한 교류에 매진했다”면서 “이 두 가지 의미에 정관에 교주로 명시된 박 전 대통령과 불행했던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를 할 수 있다는 상징성도 크다는 사실을 보탰다”고 했다.

이 설명을 들은 김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국회의원 당선 후 찾아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사과를 했고, 대통령 당선 후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고 박정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직을 수락하자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울먹이며 고맙다고 한 점 등을 종합하면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고 우 교육감은 설명했다.

2시간의 설득 후 김 전 대통령은 1주일 뒤 “특별강연과 명예박사학위를 고사한 내 생각이 짧았다”면서 그해 11월 3일 학위수여식 등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폐렴 증세로 입원해야 했고 행사는 개최가 불투명해졌다. 우 교육감은 “병원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서울에서 행사를 열어도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꼭 영남대를 방문하겠다고 했다”며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은 2006년 봄으로 연기됐다”고 기억했다.

영남대박물관 수장고에 보관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친필휘호. 영남대 제공.
우 교육감은 김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에 대한 기억도 전했다.

2006년 1월 19일 김 전 대통령을 찾은 우 교육감은 명예학위수여식 때 영남대에 선물을 줄 것을 부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제는 권력도, 힘도 없어서 선물 줄 것이 없다”고 하자 우 교육감은 친필 휘호를 제안했다. 그러자 다시 김 전 대통령은 “기운이 없어 글씨가 잘되지 않아 휘호를 안 쓴다”고 했고, 우 교육감은 영남대 총장실에 ‘민족중흥(民族中興)의 동량(棟梁)’이라는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있다고 설득했다. 그 휘호를 확인한 김 전 대통령은 ‘실사구시(實事求是)’ 친필 휘호로 화답했다는 게 우 교육감의 설명이다.

우 교육감은 “당시 시대를 넘어선 화해와 미소를 건넨 김 전 대통령의 결단을 아직도 존경한다”면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금 18년 전 사상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와 남북 간 평화적 교류, 화해협력기반 조성 등의 노력이 다시 빛을 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순회취재팀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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