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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룡 DGB금융지주 부사장
연둣빛 물결이 온 세상에 넘실대고 있습니다.

연두색(軟豆色)은 노랑과 녹색의 중간색으로 연한 콩과 나무의 새순과 비슷한 색입니다. 편안함과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연두색을 생각하면 봄이나 새싹이 연상됩니다.

미국의 색채연구가 먼셀(Albert Henry Munsell, 1858~1918)이 1905년에‘먼셀표색계’를 발표하여 색의 체계를 정립했습니다. 그는 5가지 기본 색상인 빨강(Red), 노랑(Yellow), 초록(Green), 파랑(Blue), 보라(Purple)에 인접한 색을 섞어 5가지 색을 추가하여 10색상을 완성했습니다. 5가지 색은 주황(YR), 연두(GY), 청록(BG), 남색(PB), 자주(RP)입니다. 여기에 다시 10가지 색을 추가한 것이‘먼셀의 표준 20색’입니다. 먼셀 20색 중의 노랑은 노랑연두, 연두, 풀색, 녹색, 초록, 청록, 바다색, 파랑, 감청색을 거쳐 남색과 남보라를 거쳐 붉은색으로 향합니다.

요즘은 그야말로 연두색 세상입니다. 봄비와 햇살로 시작한 수채화의 연두색은 하루가 다르게 진해집니다. 연두색은 새싹처럼 여리고 연약한 색이지만 겨우내 죽은 것 같은 나무에 힘찬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어 희망과 꿈을 선사하는 색입니다. 연둣빛 물결이 뭉게구름처럼 우리나라의 험산과 들판을 넘실대며 역동적인 내일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연두가 넘실대는 봄날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봄나물입니다. 국어 어원을 해석한 동언고략(東言考略)에 따르면 ‘나물은 나물(羅物)에서 나왔으며 ‘나’는 신라를 가리키고 나물은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무의 싹과 잎으로 그것을 요리한 것은 찬(饌)이다’라고 합니다.

산나물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산에서 나는 나물로, 보릿고개를 이기는 효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달래, 냉이, 쑥은 봄나물의 선발대고 취나물, 두릅, 돌나물, 씀바귀, 원추리 등이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나물 민족이라 하기도 합니다.

저도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나를 따라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어린 소나무 가지의 속껍질을 벗겨 먹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의 나물밥과 나물 무침은 아련한 추억 속의 성찬이었습니다.

‘산나물 서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아낙들이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산나물을 뜯어 광주리에 가득 담아 부잣집 마당에 두고 오면 다음 날 광주리에 밥이나 곡식이 채워집니다. 이를 ‘산나물 서리’라 했으며 빈부 간의 물물교환과 상부상조의 실천이었으니, 악동들이 곡식이나 과일을 훔쳐먹는 ‘서리’와는 완전히 다른 뜻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아홉 살까지 33가지 나물 이름을 외어야 했기 때문에 ‘99가지 나물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3년 가뭄도 이겨낸다’는 속담이 생겼습니다. 아래와 같은 나물 타령도 있었습니다.



달래나물 달래줄까/광대나물 웃음 줄까/물래나물 돌고 도니/

부추나물 부추겨서/나비나물 춤을 춘다

쑥나물 쑥쑥 크니/장대나물 따라 큰다/냉이나물 된장 무치고/

고사리나물 반찬 만들고/취나물 취해 볼까/곰취나물로 쌈을 쌀까

(이하 생략)”

봄 잔치의 시작이었던 꽃 대궐이 무너지면 연둣빛 새싹이 새로운 주역이 됩니다. 소쩍새가 울어주니 봄은 깊어가고, 가을의 튼실한 열매를 위해 봄부터 시작한 연둣빛이 초록으로 그리고 붉은 단풍으로 익어갈 것입니다.

깊어가는 봄을 온몸으로 느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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