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칭이 나타날 때 그 순간을 어둠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어둠을 모래에 비유할 수 있다면 어떤 인칭은 눈빛부터 얼굴 손 무릎의 순서로 작은 것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내며 드러나 내 앞에 서는 것인데 나는 순서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사실은 제멋대로 손 발 무릎과 같이 헐벗은 것들을 먼저 보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칭이 성별과 이름을 갖게 될 때에 나는 또 어둠이 어떻게 얼마나 밀려났는지를 계산해보며 그들이 내는 소리를 그 인칭의 무게로 생각한다 당신이 드러나고 있다 나는 당신을 듣는다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







감상) 문을 닫아도 어느 새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거실로 방으로 떠다니고 있다. 내 집이니 나가라는 말은 아무 소용없다. 순서도 위아래도 없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것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은 적 있었다. 나는 못 한 일을 이름도 알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이룬다. 그래서 방문은 더 꼭 잠근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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