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군비경쟁을 벌이던 미국과 소련 사이에 1962년 핵전쟁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빚어졌다. 케네디는 TV 방송망을 통해 엉클 톰의 턱밑 쿠바에 소련 군사기지가 구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서 쿠바의 핵미사일이 서방국가를 공격할 경우 이를 소련의 미국 공격으로 간주해 소련에 그만한 핵 보복 조치를 가하겠다는 핵전 불사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세계가 핵전쟁의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핵전쟁이 일어나면 소련도 미국도 1시간 내에 1억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후루시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은 미국이 터키에 설치한 핵미사일과 소련이 쿠바에 설치한 핵미사일을 동시에 철수하는 것으로 타협, 핵전쟁의 위기가 무사히 해소됐다.

미국과 소련은 이후에도 군축과 핵 관련 회담을 열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1989년 12월 이탈리아 남쪽 지중해의 작은 섬 몰타에 정박한 소련 여객선 막심고리키호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른바 몰타회담이다.

두 정상은 이 회담에서 동유럽의 변혁과 군비 축소, 경제 협력, 남미와 중동 문제 등을 논의했지만 어떤 합의도 이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몰타회담은 현대사의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두 정상이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세계는 냉전 시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며 ‘냉전 종식’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몰타회담을 계기로 핵무기를 포함한 전략무기 감축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로부터 29년 만에 판문점에서 몰타회담을 능가하는 진정한 냉전 종식을 의미하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은 한국전쟁 정전 이후 분단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1951년 10월 25일 정전회담이 열리고, 3년 뒤인 1954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곳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관련 “판문점 평화의 집이나 자유의 집이 더 대표성, 중요성, 영속성이 있는 장소가 아니겠는가”라고 올려 관심을 끌고 있다. 판문점이 세계사의 역사적 회담 장소로 기록되게 됐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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