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경찰청 장기실종수사팀 활약

▲ 1974년 프랑스로 입양된 이정화씨가 경찰의 도움으로 83세의 노모와 상봉하고 있다. 대구경찰청 제공.
백발이 성성한 83세의 노모와 한국말을 모르는 지천명의 딸은 부둥켜안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영어만 쓰는 딸은 “사랑해 엄마, 보고 싶었어”라는 말을 배워 어머니에게 전했고, 어머니는 “미안해”라는 말만 했다. 딸은 두 번 엎드려 절했다. 어머니는 절 받기를 고사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다.

2일 오후 1시께 부산 남구 대연동 한 연립주택에서 1974년 프랑스로 입양 간 이정화(55)씨는 이렇게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1973년 부모와 떨어진 세월을 고려하면 45년 만에 어머니의 품에 안긴 셈이다. 대구지방경찰청 장기실종수사팀 덕분이다. 네덜란드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남편도 힘을 보탰다.

이정화씨의 안타까운 사연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영천에 살던 이씨의 부모는 극심한 생활고를 이유로 이씨를 대구에 있는 지인에게 맡겼고, 그 지인은 이씨를 대구 중구 남산동에 있는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맡겼다. 11살 되던 1974년 프랑스로 보내졌다. 이씨는 “엄마 손을 잡고 기차에서 내리니 대구역이었다”고 기억했다.

30년 전부터 어머니 찾기에 나선 이씨는 2016년 백합보육원이 있던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를 다시 찾았다. 쉽지 않았다.

1974년 프랑스로 입양된 이정화씨가 경찰의 도움으로 83세의 노모와 만나 큰 절을 올리고 있다. 대구경찰청 제공.
1974년 프랑스로 입양된 이정화씨가 경찰의 도움으로 83세의 노모와 상봉하고 있다. 대구경찰청 제공.

대구경찰청 장기실종수사팀도 일선 경찰서에서 접수한 지 1년이 지난 실종사건을 넘겨받아 재수사하던 중 대구시청과 보육원 등지에서 보관하고 있던 무연고 실종 아동 보호의뢰서와 아동카드를 일일이 비교하는 작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1970~80년대 무연고 실종 아동들의 해외입양 사례를 다수 발견했고, 이씨의 사연을 알게 됐다. 백합보육원 소속 수녀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4월 19일이다.

장기실종수사팀은 백합보육원 입소카드에 있던 어머니의 이름으로 추적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어머니 이름이 잘못 적혀 있었던 탓이다. 어머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이씨와 이메일을 통해 확인작업을 거쳤고, 1주일 만인 4월 25일 부산에 사는 어머니를 확인했다.




어머니 또한 “10여 년 전부터 딸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말로 미안함을 대신했다.

모녀 상봉에는 네덜란드 기자 2명도 동행했다. 이씨의 사연은 이미 네덜란드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송됐고, 극적인 모녀 상봉 소식도 곧 전파를 탈 예정이다. 3주간 남편과 함께 어머니의 집에서 보낼 예정인 이씨는 “어머니를 찾아 주셔서 놀랍고 행복하다. 경찰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류상열 대구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43년 전 미국으로 입양 간 해외입양아동 2명의 가족도 찾았고, 다음 달 말과 내년 봄에 상봉할 예정”이라면서 “장기실종수사팀의 업무를 좀 더 전문화해서 가족의 끈을 이어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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