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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성무 수필가·김천시가메실경로당 회장
산자락 텃밭에서 일하다가 생각 없이 그늘로 들어선 곳이 밭둑에 울창하게 서 있는 감나무 밑이었다.

그늘진 곳이라서 들어선 감나무 밑에 선선하기보다는 쓸쓸하고 서산한 고독감에 이어서 추억으로 되새김한다.

나 혼자만의 허전함이 온몸을 감싸며 문득 생각이 ‘세월도 가고 사람도 가고’ 하는 푸념으로 이어진다.

지금 이 장소는 같이 놀던 친구들은 사거(死去)하거나 병고로 떠나고 혼자 남아서 텃밭 농사를 짓는 지금은 화사하게 비춰주는 햇빛 아래 새는 지저귀고 밭 가에 열심히 날아 노니는 나비들의 평화로운 전경이지만 추억을 삼켜버린 빈자리였다.

이곳 그늘진 쉼터는 몇 년 전 황혼기의 퇴직 공무원 5명이 지주가 나누어 준 텃밭을 심심풀이로 채소를 가꾸면서 그늘이 좋아서 간식을 하며 지난 공직생활 이야기와 때로는 지나친 농담으로 언쟁 끝에 며칠 동안 조면 하다가도 다시 대화와 소통으로 미운 정 고운 정이 얽혀서 하루라도 만나보지 않으면 병고나 있을까 궁금해하곤 했다.

무더운 여름 한낮에는 집에 있기가 힘드니까 시원한 감나무 밑에 미리 와서 전화로 불러 모으는 친밀한 사이였다.

이 감나무 밑 쉼터는 풀 한 포기 없었던 땅바닥이었는데 지금은 인걸(人傑)은 간데없고 잡초만 무성하니 참으로 인생무상을 실감했다.

고려시대 시문 한 구절에 ‘춘초는 년년녹인데 왕소(王昭)는 귀분긴가(봄풀은 해마다 자라서 푸른데 왜 왕소는 돌아오지 않는가)’하는 탄식조의 시 구절이다.

감나무 밑 그늘은 오늘도 쉼터로 기다려주는데 그렇게 즐거이 놀던 친구들은 간곳없이 왜 돌아오지 않는가! 혼자 속으로 중얼거려본다.

나는 친구들이 모두 떠나버린 이 빈자리에 더 머물고 있기 싫어서 밭일에 열중했다.

더욱 상기되는 어머니의 빈자리, 어릴 적 외출했다가 귀가하면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막연하게 좌불안석으로 어머니의 소재를 찾게 된다. 아내의 빈자리도 어머니 못지않게 아쉬움과 외로움이 상존하여 방에 들어서면 고독에 잠기게 한다.

필자가 성장 학동기에 어머니께서 농사일로 매일같이 집을 비우시다가 어떤 날은 낮 시간 때 집에 계시면 어찌나 기분이 좋고 즐거웠던지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사후에도 생전에 못한 효, 문득문득 뼈저리게 후회하는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곤 했다.

혈육이 모여 연회를 하고 정담을 나누면서 놀다가 각기 자기가 살던 곳으로 떠나갈 때는 아쉽고, 어머니, 아버지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섭섭하여 내가 먼저 대문을 닫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자식들이 올 때는 반갑지만 떠나간 빈자리는 서운해서 노부부가 무표정하게 마주 보면서 앉아 방안은 침묵으로 쓸쓸하다가, “아버지 집에 잘 도착했습니다.” 하고 전화가 올 때는 잠시라도 외로운 마음이 사라진다.

고사성어에 ‘착념삼일(着念三日)’이란 말이 있는데 가끔 마음의 빈자리에는 오늘이 없는 어제를 후회하고, 오늘이 없는 내일은 근심뿐이다! 앞일을 걱정하느라고 오늘을 허비한다. 사람은 누구나 삼일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친구들의 모임, 노래방, 계 모임, 취미생활, 기타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여 빈자리를 극복하는 것이 ‘사회적 건강이라고 한다.’

본제인 빈자리는, 공석, 공위(空位)는 역으로 이를 이용하여 지난 일을 성찰하고 후회 없이 보다 나은 진취적인 생활을 구상해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실버시대 시니어들은 사회의 소외, 배타, 불수용으로 인한 자신의 체념으로 세상을 비관하면서 조노(早老 )와 우울증으로 고독사의 경우도 가끔 매스컴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백년해로(百年偕老) 라는 말은 빈자리 없이 부부가 함께 오래 살면서 고독을 달래면서 사회적 활동과 생산적 활동을 하면서 서로 돕고 위로하면서 백년복노로 살아야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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