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관련 해묵은 논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2020년부터 중고교에서 사용할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진영의 논쟁이 재발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홍역을 치렀지만 여전히 진영논리에 의한 정치적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중·고교생용 새 역사교과서를 만들 때 기준이 되는 ‘집필기준’ 시안에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빠졌다. 또 기존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로 바뀌고, 6·25전쟁과 관련해서는 집필기준 대신 교육과정에 ‘남침’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교육부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을 2일 공개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백지화되면서 중·고생들은 2020년부터 이 집필 기준에 따라 집필되는 새 검정교과서를 쓰게 된다.

정부가 당초 올해부터 일선 학교에서 새 교과서를 쓸 수 있게 교과서 개발을 추진했지만 일정이 촉박해 아예 새 교과서 사용 일정을 2년 미루고 집필기준을 다시 만들어 제시했다. 공개된 시안에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빠졌다.

1948년 유엔(UN) 결의에는 대한민국이 ‘유엔한국임시위원단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돼 있고, 남북한이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했으므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게 연구진의 입장이다. 현재 학생들이 쓰는 교과서의 집필기준(2009 개정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에 유의한다’고 적고 있다.

명지대 강규형 교수의 주장으로는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으로 해석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이전까지는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기준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어서 논란이 이어지게 됐다.

또 새 집필기준 시안은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 대신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역대 역사 교과서에도 두 표현을 혼용했는데 이명박 정부 당시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이후 학계와 교육계의 수정 요구가 많았다고 교육부는 설명했지만 이 또한 논란거리다. 보수진영에서는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언급했고 ‘자유’를 빼면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 편찬 당시 논란이 됐던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꿨다. 집필기준 시안은 이 밖에도 동북공정과 새마을 운동, 북한의 도발·인권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이 공개될 때마다 진영이 나뉘어 특정 표현이나 이념 등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교육부는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역사교육 전체를 이념논쟁에 빠뜨려서는 국론 분열만 야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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