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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결말은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는 안갯속이다. 4·27 판문점 남북 정상 회담이 내용도 풍성하고 외양도 그럴듯한 화려한 잔칫집이었으나 왠지 ‘비핵화가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뒷맛이 깨끗하지가 않다. 이번 남북 정상 회담을 본 상당수 국민도 아마 이런 생각들을 가졌을 것이다.

판문점 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명문화된 발표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평가를 하고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행이 전제되지 않은 선언적 문구에 불과하다. 이번 비핵화 문제에 대한 판문점 회담은 단지 북·미회담의 물꼬를 터주는 것으로 끝을 맺었을 뿐이다. 비핵화의 방법과 절차, 시간 등을 정하는 로드맵의 완성은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겨졌기 때문이다. 이 회담에서 어떤 결말이 나오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비핵화 그림의 화룡점정이 결정되는 것이다.

트럼프의 빅 방식 일괄 타결과 김정은의 단계적 비핵화 해법이 어떤 간격으로 좁아질 것인지 만만찮은 숙제다. 여기다 김정은이 비핵화의 요구 조건으로 내밀 청구서의 내용도 현재까지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특히 통역과 경호원 없이 남북 두 정상만이 50여m의 도보다리 끝 벤치에서 나눈 30여 분간의 대화 내용도 비밀에 부쳐져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갖가지 억측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청와대를 비롯해 여권에서는 4·27회담으로 한반도의 비핵화가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흥분하고 있으니 국민도 덩달아 문재인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지레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정은이 풍계리 핵 실험장을 남한 측 언론과 미국 및 유엔의 IAEA 핵 전문 요원들이 참관한 가운데 이달 안에 폐쇄조치를 하겠다고 밝혔을 뿐 보유하고 있는 핵과 미사일 등의 프로그램 해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는 실정이다. 마치 2008년 6월 6자회담의 합의에 따라 영변 핵 시설 가운데 냉각탑을 폭파해 미국으로부터 비핵화의 의지를 보여 준 것이라는 평가를 받은 후 미국 측이 영변의 핵시설 중 5MW 원자로에서 샘플을 채취해 플루토늄을 얼마나 생산했는지를 확인하려고 하자 처음엔 동의했다가 2주 만에 약속을 어기고 6자회담을 깨어 버린 전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결같이 이번 북·미회담에 대해 “핵무기 제거가 완전한 비핵화의 의미며 과거와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더군다나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성과가 없으면 회담장을 떠날 것”이라고 북한 측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미국 측의 강경한 협상 자세를 북한의 김정은은 어떤 자세로 회담에 임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비핵화의 로드맵 완성이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겨졌으나 이것은 북·미간 두 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인 데다 한반도 주변국인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도 민감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다. 한반도는 지금까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간의 치열한 각축의 현장이자 패권 추구의 길목이 되어왔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이뤄진다면 지구 상 마지막 냉전지대였던 동북아를 새로운 평화와 협력의 지역 공동체로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들의 셈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가 돌출될지 누구도 모르는 위험도 내재돼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 만큼 문재인 정부와 국민은 4·27회담으로 비핵화가 모두 이뤄진 듯한 착각에서 벗어나 북·미 정상회담의 결말을 냉정하게 지켜보는 이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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