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탈출 이주민 보호지위 폐지…"20개월내 비자 못받으면 추방"

미국 정부가 20년 가까이 체류한 온두라스 출신 이민자 수만 명에게 퇴출을 예고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커스텐 닐슨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1999년부터 ‘임시보호 지위’(TPS)로 미국에 체류하는 온두라스 출신 이민자들에 대해 4일(현지시간) 이 같은 조치 계획을 통보했다.

국토안보부는 20개월 뒤인 2020년 1월 5일 이들에 대한 TPS를 갱신하지 않고 그대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TPS로 미국에 체류하는 온두라스 이민자 최대 5만7천 명이 따로 비자를 취득하지 못하면 그 시점 이후 강제추방될 위기에 몰렸다.

이번에 퇴출대상이 된 온두라스인들은 1999년 중미를 덮쳐 1만여 명의 사망자를 낸 허리케인 ‘미치’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한 피란민들이었다.

당시 TPS로 지정된 온두라스인들은 8만7천여 명이었으나 새 체류권 획득이나 귀국 등으로 그 수가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안보부는 이번 조치가 온두라스의 생활환경을 고려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 부처는 “TPS 지정의 근거로 작용한 온두라스 허리케인 피해가 더는 실질적으로 간주할 수 없을 정도로 감소했다”며 “1999년 이후 허리케인으로 인한 온두라스 상황이 눈에 띄게 개선됐고 상당한 복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를 두고 저개발국 이민자들에 대한 강한 반감을 노출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 비전을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케빈 애플비 이민연구센터 정책 선임국장은 “백악관이 외교정책의 이익이 아닌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TPS 폐지에 드라이브를 건다는 데는 의문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토안보부는 최근 6개월 동안 TPS를 하나씩 폐지하는 방식으로 이민자 통제를 강화해왔다.

출국준비나 새 법적 지위를 얻기 위한 시간을 12∼18개월씩 주고 엘살바도르인 20만 명, 아이티인 5만 명, 네팔인 9천 명에 대한 TPS를 없앴다.

NYT는 역대 미국 정부가 관행적으로 TPS 시한을 연장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대상자를 최소화하거나 폐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WP는 국토안보부가 온두라스의 환경 개선을 언급했으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온두라스는 세계 최악의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국가로 지목되고 있으며 작년 대선 이후 심각한 정정불안을 겪고 있다.

WP는 TPS가 자연재해나 분쟁으로 불안정해진 국가로 이주민들이 추방되는 사태를 막으려고 1990년 도입된 인도주의 제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애플비 국장은 “TPS 폐지는 온두라스나 중미 상황을 악화할 것이고 시간이 지나 언젠가 미국에 그 대가가 확실히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두라스는 이번 조치에 유감을 드러내면서도 결정에 저항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주재 온두라스 대사관은 “미국에서 20년가량 거주한 이들이 되돌아가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라며 “온두라스로서도 이들을 송환받을 여건이 안된다”는 말했다.

나중에 온두라스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이 결정할 자국 주권 사안이지만 우리로서는 크게 비통하다”며 “조국으로 돌아오는 국민은 언제나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
연합 kb@kyongbuk.com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