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동안의 한승희씨 101세 치매 시어머니 보살펴
홀몸 노인 반찬·말벗 봉사도

▲ 16년 동안 시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핀 한승희씨. 윤관식 기자.
칠순을 바라보는 그녀에게는 자신보다 35살이나 많은 딸이 있다. ‘엄마’라 부른다. 2003년부터 극진히 모시는 그 딸은 6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다. 101세 치매 시어머니를 친딸처럼 보살피는 며느리 한승희(66·대구시 달서구 이곡동)씨 이야기다.

‘가족’으로서 당연히 시어머니를 보살핀다는 한씨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서 낯선 곳에서 마감하게 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요양시설에 시어머니를 내맡기지 않은 이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의 손을 거쳐야 했다.

그녀는 “예전에 다른 자식들이 농담 삼아 ‘친구가 많은 곳에 가고 싶지 않나’고 슬쩍 물어봤는데, 엄마가 ‘그렇게 좋으면 네가 가라’고 하더라”면서 “엄마와 더 재미나게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했다”며 활짝 웃었다.

아기처럼 변해버린 엄마이지만, 한씨는 엄마와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는 게 이제는 즐거운 일상이 됐다고 했다.

1979년 결혼하고 마주한 엄마는 온화한 성격으로 자신을 대해줬다고 기억했다. 여느 고부 사이보다 더 잘 지냈다. 2003년 시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신 다음에는 엄마와 함께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한씨는 “위암 투병한 시아버지 치료를 위해 매 끼니 몸에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신통하다는 병원은 모조리 수소문해 통원치료를 함께 다니기도 했다”면서 “혼자 남은 엄마가 매 끼니를 혼자서 챙긴다는 게 상상조차 안 됐다. 엄마와 함께 살아야만 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자신도 온전치 못한 시기가 있었다. 30대 때 허리디스크로 오랜 시간 병상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면서 물 대신 음식을 가려먹었고, 지압 기계로 허리통증을 줄였다. 이러한 과정도 엄마를 모시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 지난 4월 18일 재단법인 보화원회관에서 한승희씨가 효행상을 받고 있다. 대구 달서구청 제공.
한씨는 “약물치료에도 감기가 계속 걸렸었는데 병에 좋은 음식부터 바꿔보니 점차 좋아졌다”며 “이때부터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잘 알게 됐고 엄마 식사를 챙기는 데 도움이 됐다. 엄마가 치매를 앓고 있지만, 감기 같은 잔병은 몇 년 동안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런 방식이다. 엄마의 병세가 악화하지 않도록 숫자세기와 박수 치기는 기본이고, 항상 전통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든 음식만 드렸다. 또 고령인 탓에 백내장 수술을 엄두도 내지 못한 상황이지만 늘 곁에서 엄마에게 필요한 물품을 찾아서 건네기도 했다.

엄마가 장기요양등급 1등급 판정을 받은 지난해 9월부터는 요양보조사가 하루에 4시간씩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제도조차 모르고 있다가 지난해서야 요양보조사의 도움을 받고서야 숨통이 조금 트였다.

한씨는 엄마가 110살까지도 거뜬하게 살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다. 최근 병세가 조금씩 나아지면서다. 그녀는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랫동안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다른 건 하나도 바랄 게 없다”고 했다.

그녀는 엄마 모시는 일 외에도 남편과 함께 5년 전부터 매달 한 차례씩 홀몸 노인 가구 15곳을 찾아 반찬을 전하고 말벗 봉사도 해준다. 어려움을 겪는 홀몸 노인 또한 자신의 엄마와 같아 보여서다. 2007년부터 5년간 대구의 한 호텔에서 경로잔치도 열어주기도 했다. 여가활동은 꿈도 못 꾸고 이웃 사이에서도 소통이 부족한 엄마와 같은 노인들이 안타까운 마음에서 마련한 일이었다고 한씨는 설명했다.

한씨의 사연을 들은 재단법인 보화원은 지난 4월 18일 ‘제61회 보화상 시상식’을 열어 효행상을 주고 격려했다. 권영진 대구시장도 8일 ‘제46회 어버이날 기념행사’에서 한씨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다.

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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