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 소문난 효자 강신정씨 평생 노모·지체장애 동생 돌봐
동네서 날품팔아 생계 책임져···마을일도 적극 참여 칭찬 자자
영양군 입암면 방전리에서 10여 평의 낡은 집에서 평생을 노모와 몸이 불편한 동생과 함께 살며 효자로 소문이 자자한 강신정(53) 씨.
7일 오전 강 씨는 환한 웃음으로 자신의 집을 방문한 기자를 반겼다.
방에 누워 계신 든 88세의 노모는 8일 제46회 어버이 말을 맞아 아들 강신정 씨가 경북도지사 효행상을 받게 되었다는 기자의 말에 거실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기어 나오셔서 연신 아들 자랑에 때론 눈물지으며, 때론 아들 칭찬에 연신 싱글벙글한다.
강 씨가 노모를 돌보면서 집안의 가장이 된 건 7살 되든 해 당시 40대의 젊은 아버지가 평소 잦은 음주와 고혈압 등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시면서 시작됐다.
3남 2녀 중 강 씨는 위로 13살 터울의 형과 누나와 아래로 남동생과 여동생을 두고 있었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읜 빈자리를 기다리는 것은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이었다.
형과 누나는 일찌감치 학업과 살길을 찾아 도시로 나가면 집에는 몸이 아픈 어머니와 2살 아래 남동생, 5살 아래 여동생만 남게 되었다.
7살의 철부지 강 씨는 어린 나이에도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부자가 되어 어머니와 동생들을 배불리 먹여야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옆 동네인 청기면 구매리의 한 농가로 머슴살이를 갔다.
하지만 어린 나이의 강 씨를 기다라는 것은 주인의 매질과 욕설, 학대, 심지어 ‘집안에 놓아둔 돈이 없어졌다’며 도둑 누명까지 씌워가며 새경 한 푼 받지 못한 채 4년 머슴살이를 채 못 채우고 10살이 되던 해 쫓겨났다.
강 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어린 나이에 남의 집 종살이를 하면서 얻어맞아 허리를 심하게 다쳐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일도 못 나가고 계셨고 두 살 터울의 동생도 얻어맞아 그때 머리를 다쳐 지적 장애 3급 판정을 받아 지금 같이 살고 있다”며 “내 몸도 매우 아팠지만 병든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을 일단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가족들 밥만 먹일 수 있다면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에 어머니를 모시는 게 힘들지 않았냐는 기자에 물음에 강 씨는“ 내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받들었으며, 지금까지도 내가 효도 할 수 있게 곁에 있어 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면 살고 있으며, 오히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맛난 음식 더 많이 못 드려 죄송하다”고 답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런 강 씨를 두고 여느 딸내미들보다도 더 노모를 잘 모시는 효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한 주민은 “결혼도 하지 않은 50대의 아들이 거동이 어려운 어머니의 청결을 위해 목욕탕에도 주기적으로 모시고 가며, 모친의 옷 또한 깔끔하게 챙겨 웬만한 딸내미나 며느리보다 낫다”며“동네 어르신 분들에게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열 번 만나면 열 번 다 공손히 인사하지 마을에 행사가 있을 시에는 내일 같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평소 환경오염방지를 위해 폐비닐수거 활동이나 마을 환경정비나 경로당 환경정비에 솔선수범하는 등 우리 동네 보물덩어리와 같은 효자”라고 입이 닳도록 칭송했다.
강 씨의 동생 강신권(51) 씨도“형은 나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어린 시절 내가 동네 애들이 괴롭히면 나타나 나를 구해주는 나에겐 슈퍼맨처럼 멋진 형”이라며“바램이 있다면 엄마와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고 형이 어버이날을 맞아 상을 받는다니 너무너무 기쁘다”고 좋아했다.
한편 영양군은 이웃 어른분들에게도 부모처럼 생각하여 공손하게 대하고, 동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사랑을 아끼지 않고 효를 몸소 실천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강 씨에게 8일 제46회 어버이날을 맞아 경북도지사 표창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