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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경북을 걷다] 4. 군위 한밤마을 10리 돌담길

구불구불 삐뚤삐뚤···돌담따라 발길따라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등록일 2018년05월13일 18시48분  
한밤마을 옛길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김영랑 시인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의 배경을 고스란히 현실에 옮겨 놓은 듯한 곳이 바로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이다.

대구광역시 팔공산 자락에서 발원한 남천·동산계곡 물길(위천 상류)이 만나는 지점 바로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순수한 우리말로 ‘한밤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제주도를 닮은 돌담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서 많은 사람이 알음알음 찾아오고 있다.

한밤마을 옛길
‘한밤마을’이라 불리는 이유는 ‘일’이나 ‘대’는 크거나 많음을 뜻하므로, 팔공산 북쪽의 너른 산자락에 바짝 붙은 마을이라 밤이 길다는 의미로 이름 붙였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졌다. 행정명이 대율리(大栗里)로 불린다는 이유로 밤이 풍성한 마을로 짐작하지만, 사실 밤나무는 많지 않다. 마을 이름에 얽힌 사연에 따르면 처음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은 일야(一夜)라는 이름을 썼고, 950년께 이르러 대야(大夜)라고 고쳤다 전해진다. 시간이 흘러 1390년 무렵 한밤마을에 부락을 이룬 부림 홍씨의 14대손 홍노라는 사람이 마을 이름 안에 밤 야(夜)는 좋지 않다 하여 음이 같은 밤 율(栗)로 고쳐 쓴 것이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고 전한다.

마을풍경
△돌과 바람, 자연이 빚은 마을

마을 내력을 좀 더 알아보면 한밤마을이 제주도를 닮았다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주도는 돌과 바람, 그리고 여자(해녀)가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가운데 여자를 제외한 돌과 바람이 한밤마을에도 많이 있으니 괜히 제주도를 닮았다는 게 억지는 아닌 셈이다.

이처럼 돌이 많이 있었던 것은 마을 터를 잡을 때부터 땅을 파면 돌이 나와 그 돌을 주춧돌 삼아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1930년 여름 홍수 때의 일로 늦은 밤에 두 시간 넘게 퍼부은 비가 골짜기를 순식간에 휩쓸고 가면서 발생한 산사태와 수해로 93 가옥이 유실되고, 92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36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부림 홍씨 종택
대참사가 발생한 이듬해 수해 전말을 기록해 세운 ‘수해기념비’가 대율2리 도로변에 있다. 대홍수는 한밤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돌을 지고 날라 돌담을, 얼마 뒤엔 사방에 널린 돌들을 이용해, 수해가 컸던 동산계곡 물길 둔치를 따라 길이 1㎞ 가량의 ‘돌방천(防川)’을 쌓았다.

대율리교회 옆으로 가면, 둔치를 따라 이어진 높이 2m 정도의 단면이 사다리꼴 모양인 돌축대를 볼 수 있다. 현재 800m 정도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 팔공산 돌들이 한밤마을로 쓸려왔고, 사람들은 그 돌로 담장을 쌓은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재해를 활용해 마을을 꾸몄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한밤마을은 모든 것을 잃었던 슬픔과 절망 속에서 새로 태어난 뼈아픈 과거를 가진 마을이다. 비단 집뿐만 아니라 마을 내에 자리 잡은 과수원과 밭에도 돌담을 둘러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돌이 많다 보니 바람 때문에 농사가 시원치 않았던 것을 떠올리고 돌담으로 바람을 막았으니 자연의 순리를 슬기롭게 대처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밤마을 옛길 이정표
한밤마을에서는 시골동네의 한적함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자연 위에 세운 마을’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경험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기자기한 돌담길을 만든 돌은 작게는 지름이 10㎝ 정도 되는 주먹돌부터 크게는 80㎝ 정도 호박돌까지 매우 다양하다. 돌담 높이는 1.5~1.7m 정도로 낮은 것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돌담은 꾸밈없이 투박했다.

날씨가 더워지자 담을 덮고 있던 푸른 잎들이 상큼하기 그지 없고, 그대로 달려와 안아줄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집집 마다 경계를 이루고 있는 돌담들은 집을 구분 짓는 하나의 벽이라기보다 집 사이로 난 미로(迷路)였다.

돌담을 덮은 연초록 물결
한밤마을 돌담길 걷기는 한밤마을 주차장→성안숲과 대율초등학교 입구→대율리 석불입상→한밤마을 돌담길 이리저리 돌아보기→ 군위아미타여래삼존 석굴 순으로 걸으면 된다. 거리는 약 4.8km로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

성안숲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공간, 성안숲

한밤마을 걷기는 주차장을 출발해 마을 북쪽 입구에 조성된 성안숲부터 시작한다. 성안숲은 팔공산 자락이 마을의 동ㆍ서ㆍ남 방면을 성처럼 둘러싸고 있는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홍천뢰 장군이 의병을 훈련 시켰던 곳이기도 하고, 마을을 보호하는 신성한 공간으로의 의미도 깊다. 도로 양쪽으로 각각 만들어진 성안숲에 몸을 이리저리 뒤튼 소나무들이 마을의 모습을 보일락말락 감추어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겨울 찬바람을 막아주는 것이 주목적이었을 것이고, 여름에는 솔바람이 휘도는 시원한 쉼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현재는 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908번 도로로 인해 숲이 양쪽으로 갈라졌지만, 옛날에는 숲도, 마을도 한데 모아져 있다 보니 규모가 제법 컸다고 한다.

한밤마을 상징 진동단
성안숲으로 들어서기 전 살펴봐야 할 것은 한밤마을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도로 한가운데 세워진 진동단(鎭洞壇)이라는 이름의 돌솟대다. 화강암으로 세운 솟대의 꼭대기에는 오리 한 마리가 앙증맞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진동단은 한밤마을의 풍수지리학적 위치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배의 형세를 띤 한밤마을이기에 돛대 또는 닻의 역할을 하는 진동단을 세워 ‘움직임을 다스려’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이 같은 바람은 1930년 대홍수가 난 이후로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1966년에 화강암으로 진동단 솟대를 세웠다고 한다. 한밤마을 어디에도 우물이 없다는 점인데 풍수지리학상 마을 자체가 배의 형상이다 보니 우물은 배에 구멍을 뚫는 거나 마찬가지란 이유에서다. 우물이 없는 것이 마을이 형성된 시점부터인지, 아니면 대홍수 이후 만들어진 금기인지는 알 수 없다.

돌담
△어느 때 와도 좋은 한밤 마을 돌담길

임진왜란 때 이 마을 출신으로 영천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홍천뢰 장군이 의병들을 모아 훈련을 하기 위해 만든 숲으로 숲 한가운데에 홍천뢰 장군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성안숲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면 본격적인 한밤마을 산책이 시작된다. 한밤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간략한 마을 안내도가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한밤마을은 대율1, 2리와 남산1, 2리, 동산1, 2리 등 6개 리로 이루어진 큰 마을이다.

대율리 대청
길이 얼기설기 얽혀있어 복잡해 보이지만 어떤 길에서든 마을 중앙으로 향하면 대율리 대청을 찾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율리 대청을 등대로 삼으면 복잡한 돌담길 안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거의 모든 집이 이끼 낀 돌담을 둘렀다. 구불구불 삐뚤빼뚤, 돌담은 이어지고 끊기며 미로 같은 골목길을 만들어낸다.

이끼로 덮혀 있는 돌담
돌담 위론 산수유나무, 감나무, 사과나무, 은행나무가 많다. 봄과 여름에는 푸른 잎으로, 가을에는 빨갛게 익어가는 산수유 열매, 주황빛 감, 아무렇게나 떨어져 구르는 샛노란 은행과 은행잎, 겨울에는 바람에 쓸리는 말라붙은 담쟁이 잎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처럼 오랜 세월 쌓이고 반복되어 닳아 온 돌담들이, 한사코 안온하게 감싸고 있는 건 낡은 한옥이다. 한마디로 ‘돌담도 길고 밤도 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돌담으로 둘러 쌓인 밭
사방으로 이어진 돌담길에는 특별한 이정표가 없다. 그래서 돌담길이 4Km 정도라고 하는 이도 있고, 6km 가 넘는다고 하는데 거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걷고 싶은 대로 걸으면 된다. 걷는 순서도 없고 걷는 사람 마음이다. 그저 걷고 싶은 사람 발길 머무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한밤마을 걷기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주는 대율리 대청(大廳)은 꼭 기억해 둘 일이다. 이 마을 자랑거리이기도 하지만 전통가옥들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돌담길을 걸을 때 위치 파악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대청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밤마을 안내도
한때 학동들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쓰였으며 지금은 마을의 경로당이자 문화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본디 대청이란 공간이 집의 가운데에 있는 마루를 뜻하는 것인바, 대율리 대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대청 앞에 한밤 돌담 옛길 1, 2, 3 이정표 팻말이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돌담에 핀 초록 생명
어느 시인은 자세히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시를 썼다. 아무것도 아닌 한 줄 문장에 삶의 심연이 들어 있다. 가만히 오래 보자니 꽃보다 잎이 고맙다. 한바탕 소란한 꽃의 일보다 몇 계절을 건너도 뭉근할 잎의 일이 덕스럽다. 먼 데 보는 눈은 흐려져도 봄마다 깊어지는 눈이었으면 한다. 겨우겨우 꽃이나 알아보는 눈 말고 우물처럼 깊은 눈 말이다. 만물이 다 유심해지는 눈. 오래 볼 줄 아는 근력만은 팽팽해져서, 해마다 잎이 더 감사해져서, 봄 꽃의 생이 짧거나 말거나 애태우지 않는 한밤마을 돌담을 연초록 잎으로 덮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넉넉함을 배우고 느낀다.
▲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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