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삶은 뜨끈한 밤을 큰 칼로 딱 잘랐을 때
거기 내가 누워 있는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레가 처음 들어간 문, 언제나 쉽게 열리는
작은 씨방 작은 알 연한 꿈처럼 함께 자랐네
통통하니 쭈글거리며 게을러지도록 얼마나 부지런히 밥과 집을 닮아 갔는지
참 잘 익은 삶


딸과 딸과 딸이 둘러 앉아 끝없이 밤을 파먹을 때마다
빈 껍질 쌓이고 허공이 차오르고 닫힌 문이 생겨났다
말랑한 생활은 솜털 막을 두르고 다시 담담한 문을 여미었다
강철 같은 가시는 좀도둑도 막아주었다
단단한 씨방 덜컹 뜨거워지는데
온 집을 두드려도 출구가 없네
달콤한 나의 집, 차오른 허공이 다시 밤으로 채워질 때, 혹은 연탄가스로 뭉싱뭉실 채워질 때
죽음은 알밤처럼 완성된다

죽음은 원래가 씨앗이기 때문이다




감상) 그 날 그 카페로 참새 한 마리 날아들었네 나가는 문을 몰라 유리에 부딪히기를 몇 번, 바닥으로 떨어져 잠시 잠잠해졌네. 그 새를 거기서 죽게 하느냐 내가 거기서 죽느냐 그것이 문제였네. 두 팔을 걷어붙이고 죽을힘을 다해 새를 잡고 들어온 창 앞에 놓아주었네. 허공을 그으며 날아가는 새 그 순간 나도 같이 살아났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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