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 이공(理恭·즉 효소 대왕)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와 하례하고는 천천히 살펴보고 말했다. ‘이 옥대(玉帶)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왕이 말한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이 쪽 하나를 떼어 물에 넣어 보십시오.’ 이에 옥대의 왼편 둘째 쪽을 떼서 시냇물에 넣으니 어느새 용이 돼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이내 못이 됐으니 그 못을 용연(龍淵)이라고 불렀다. 왕이 대궐로 돌아오자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 ‘천존고(天尊庫)’에 간직해 두었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지면 날이 개며 바람이 멎고 물결이 가라앉는다. 이 피리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삼국유사 권 제2 기이 ‘만파식적’조의 내용이다.

“‘선왕께서 신적(神笛)을 얻어 나에게 전해 주셔서 지금 현금(玄琴)과 함께 내고(內庫)에 간수 해 뒀는데 무슨 일로 국선(國仙)이 갑자기 적에게 잡혀갔단 말인가.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는가. 이 때 상서로운 구름이 ‘천존고(天尊庫)’를 덮었다. 왕은 또 놀라고 두려워서 조사하게 하니 천존고 안에 있던 현금과 신적 두 보배가 없어졌다.” 삼국유사 권 제3 탑상 백율사(栢栗寺)조의 기록이다.

위의 두 기록은 신라 제31대 신문왕(재위 681~892)이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을 얻어 천존고에 보관했다는 내용과 신문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효소왕(692~701) 대에 있었던 만파식적 도난 사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기록에서 ‘천존고’라는 창고의 이름이 나온다. ‘천존고’는 지금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월성(月城)에 있었던 신라 시대 왕실 보물창고의 이름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시 마동의 연구소 부지에 그간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관하는 건물을 지어 ‘천존고’라 이름 붙이고 16일 문을 연다. 이 현대식 천존고는 유물의 소장, 열람, 전시는 물론 소규모 회의장까지 갖췄다. 준공식을 기념해서 ‘덕업일신 망라사방’ 전시를 함께 개막하는데 현존 최고(501년 제작) 신라비인 ‘포항 중성리 신라비(국보 제318로)’도 선보인다. 경주에 또 하나의 보물창고가 문을 연 것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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