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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북한은 16일 새벽 12시 30분쯤 우리 측의 맥스선더 훈련을 이유로 고위급회담을 무기 연기한다고 알려왔다. 통일부는 “이에 따라 오늘 예정된 회담은 개최되지 않는다”며 “정부 입장은 유관부처 협의를 거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미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우리 측의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이 ‘판문점 선언’에 대한 도전이며 한반도 정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군사도발이라며 이날 개최키로 했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은 “선의를 베푸는 데도 정도가 있고 기회를 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북남고위급회담이 중단되게 되고 첫걸음을 뗀 북남관계에 난관과 장애가 조성된 것은 전적으로 제정신이 없이 놀아대는 남조선당국에 그 책임이 있다. 미국도 남조선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국면을 놓고 일정(日程)에 오른 조미수뇌상봉(朝美首腦相逢)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 엄포를 놓았다.

모처럼 미국과 북한 간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남북이 함께 바라던 한반도 비핵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결정될 전망인데, 이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돌변은 늘 보아온 작태다. 우리가 소설을 읽든지 드라마를 보던지 불량배에 속하는 악역을 맡은 인물은 언제나 트집을 잡고 아무렇게나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태연하게 약속을 어기거나 그 약속내용을 다르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곤 한다. 약속의 문구가 추상적이고 모호할수록 그러하다.

이건 예부터 그랬다. 그래서 춘추시대 초기, 제(齊)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군주의 아들인 공자(公子)들이 망명을 가는데, 공자 소백에게 권하는 포숙의 말이 명언이다. 큰 나라는 변덕이 많으니 작은 나라로 가자는 것이었다. 과연 소백은 가깝고 작은 거 나라로 망명하였고 후일 돌아와 제환공이 되어 천하를 지배하는 패자(?者)가 될 수 있었으며 큰 나라인 노(魯)나라로 망명한 공자 규는 죽임을 당했다.

북한은 큰 나라는 아니지만, 거의 핵보유국 수준이다. 따라서 힘이 있다. 그래서 저렇게 큰소리를 치고 미국 대통령과 당당히 한자리에 앉도록 예정되어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국제사회의 동향과 역동은 힘을 바탕으로 한다. 강자(强者)의 말이 곧 정의고 법이다. 다시 말하여 힘이 지배하는 무정부상태요 정글 지대다. 어떠한 논리나 약속도 힘이 받쳐줄 때 비로소 기능을 발휘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세계의 패권국이며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민주주의란 합리적인 권력구조에 의하여 국가의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고 이 나라의 건국이념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므로 다른 나라에 대하여 영토욕이나 제국주의적 지배욕이 없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와는 혈맹의 관계이므로 우리의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 강대국이므로 속속들이 믿거나 전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힘을 가지고 국제사회에 한몫하는 자주국방을 달성하는 일이다.

미국의 북한정책 - 선(先) 핵 포기 후(後) 경제부흥 지원 카드는 타당하다고 본다. 북한 경제가 부흥하여야 정치 수준도 올라갈 것이며 어차피 우리가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이 그만큼 줄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고비마다 북한이 어떤 트집을 잡을지, 변덕을 부릴지 아마도 험난한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부는 항상 이에 대비하는 대북 및 대미전략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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