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가 몰락했다. 마르코스는 피플파워에 놀라 허겁지겁 미국 하와이로 줄행랑을 놓았다. 민주화 시위대가 독재자가 머문 말라카냥 궁에 입성했을 때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가 수집한 3000여 켤레의 구두가 이들을 맞았다.

이멜다는 남편의 권력을 악용, 16억 달러의 재산을 모아 세계 최고의 갑부라는 말을 들었다. 그녀의 재테크 수단은 남편의 권세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멜다의 사치 행각에 대한 해명은 필리핀 국민을 다시 한 번 분노케 했다. “궁핍한 필리핀 빈민들은 숭배할 수 있는 스타를 원하며 나는 이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아름다워야 할 의무가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지난 2014년에는 인도판 이멜다가 등장했다. 자야람 자얄랄리타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총리가 사치스러운 생활과 부패로 몰락한 것이다. 그녀는 타밀나두 주에서 다섯 차례 주 총리를 지냈으며, 지지자들은 그를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인기 영화배우 출신인 그녀는 재임 기간 동안 6억 루피 이상을 부정 축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했더니 명품 신발 750 켤레, 옷 1만 벌이 발견됐다.

이번에는 말레이시아 이멜다가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한때 높은 평가를 받았던 나집 라작 전 말레이시아 총리 부인의 이야기다. 지난 9일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패배한 나집 전 총리는 사치벽으로 유명한 부인 로스마 만소르와 함께 말레이판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나집은 2009년 설립한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2015년까지 최대 60억 달러(약 6조4000억 원)의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른바 ‘1MDB 스캔들’의 몸통으로 나집의 부인 로마스가 떠오르고 있다. 그녀는 1MDB에서 빼돌린 돈으로 22캐럿 핑크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사치품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개당 수천만 원 하는 에르메스 버킨백만 50여 개를 사들였다니 이멜다도 울고 갈 일이다. 로스마는 “어렸을 때부터 저축이 취미였다. 내 돈으로 보석과 옷을 사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황당한 해명 또한 이멜다와 판박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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