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jpg
▲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5월 15일은 또 다른 특별한 날이다. 대학생 청년 조성만이 명동성당에서 할복 자결한 날이다. 전주 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입학한 조성만 학생은 조국의 분단에 가장 가슴 아파했던 젊은이였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역사를 가진 나라가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렀는데 분단이 해결될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고 절망했다. 미국이 통일을 가로막는다고 보고 미국 축출을 외쳤다. 미국 문제나 분단 문제 모두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르게 바로 보겠지만 당시 그는 그렇게 느꼈다.

그는 곧 예정된 88 서울올림픽이 남북 공동으로 개최되길 바랐다. 그가 자결할 때 외친 구호가 ‘공동올림픽 개최하여 평화통일 앞당기자!’였다. 그때 많은 재야단체 사람들과 학생들도 같은 바람이었다. 계속 서로 적대해서는 희망이 없고 갈라진 세월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다시 하나로 합치기는 그만큼 힘들어진다고 보았다. 무엇보다도 동족상잔의 전쟁을 또 치르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다.

분단된 나라 남쪽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는데 같은 민족이 따로따로 팀을 구성해 참가하는 건 누가 봐도 어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공동 개최와 단일팀 구성을 통해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평화와 통일의 기운을 높이자는 뜻도 담겨 있었다. 함께 하다 보면 그만큼 거리가 좁혀지고 머릿속에 깊이 박힌 적대감을 녹여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공동개최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엷어져만 갔다.

30년 만에 비밀 해제된 한국 외교부의 자료를 보면 북한이 미국에게 북미대화와 올림픽 남북공동개최를 제의했지만 미국은 남한 정부의 입장을 의식해 거부했다. 남한 정부는 북한 정부가 제안한 단일팀 제안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북한도 자신들과 친화성이 있는 나라들을 상대로 남한은 올림픽 개최지로 부적합한 곳이라고 홍보하고 다녔다. 남북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조성만 열사는 꿈꿨다. 평화와 통일을. 그가 자결한 지 무려 30년이 흐른 2018년 봄은 특별했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이 손을 맞잡고 입장했다. 남북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만나 한반도 평화 체제를 약속하고 온 겨레와 전 세계시민이 보는 앞에서 어떤 고난도 함께 헤쳐나가자고 다짐했다. 조성만 열사가 직접 보았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화해의 물결이 그가 꿈꾸던 모습은 아니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조성만 열사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다만 장례식을 치를 때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필자는 이부영 선생을 비롯한 출옥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서울민주투쟁연합에서 선전국장을 맡았다. 대표를 맡고 있던 이부영 선생이 조성만 열사의 자결과 의미를 알리는 격문을 180만 장 만들라는 ‘오더’를 내렸다.

서울대에서 출발해 서울시청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모교인 전주 해성고등학교를 들른 뒤 광주 망월동 묘역에 도착했다. 격문을 거리거리에 뿌리면서 갔는데도 약간 남을 정도였다. 조성만 열사 추모제에 올해 처음으로 참석했다. 긴긴 세월 너무나 무심했다.

추모제 자리에서 아버지께서 인사를 했다. 밝은 모습 보여주려 애를 쓰셨다. 이부영 선생이 추모사를 했다. 가장 기억나는 말이 ‘적공’이다. 굴곡진 현대사를 바로 펴기 위해 내 한 몸 돌보지 않고 앞장선 많은 사람이 ‘공덕’을 쌓은 덕에 오늘이 있게 되었다는 말씀이셨다.

굽은 역사는 펴야 하고 왜곡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하며 분단된 한반도의 허리는 이어야 한다. 외세는 배제되어야 하고 자주적인 힘으로 해결하고 통일도 스스로 힘으로 해야 한다. 민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공적을 쌓느냐에 따라 민족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오늘 몸짓 하나 생각 하나가 우리 모두의 미래를 결정한다 생각하니 오늘을 사는 자세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