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 상락선원

▲ 혜문 스님
신록의 계절 오월도 무르익었다. 어디를 가도 푸르고 포근해 무얼 내주어도 아깝지 않고 다시 채워질 것 같은 충만감에 젖어 마냥 즐겁고 흐뭇하다. 이 좋은 계절에 딱 어울리는 어느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보면 그 예쁨이 오래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더 더 오래보면 사랑도 괴로움이다. 이런 삶이 과연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할까?

요맘때면 늘 회자되는 세간에 잘 알려진 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귀한 존재다) 삼계개고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존재하는 세상이 괴로우니 안락의 길을 제시한다)가 있다. 부처님이 사셨던 삶의 내용을 탄생한 날에 맞춰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모든 존재의 중심이 되는 아(我 = 자기)는 이 우주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것인데, 아(我)인 내가 존재성을 잃는다면 세상 모든 것은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유일하고 귀한 존재라는 말이다. 이렇게 귀한 존재가 항상 예쁘고 사랑스럽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존재하게 된 아(我)는 나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변하면서 늙어가고 병도 든다. 그리고 반드시 죽는다. 또한 이 과정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자꾸자꾸 잃게 된다. 그리고 원치 않는 상황과 자주자주 만나게 되고 갖고 싶은 것이 많은데도 얻지 못해 항상 불만이다. 이런 갖가지 괴로움의 시작은 자신이 지은 업으로 인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아(我)라는 존재로부터 시작됐다.

부처님은 신록의 계절에 이 세상에 오셔서 80년을 생존하고 떠나셨다. 그분이 세상을 보는 눈은 어떠했을까? 태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세상 누구보다도 부유한 삶이었지만 위와 같은 삶의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기 삶의 태도를 출가(出家)라는 방식을 통해 다시 정리했다. 가진 것을 누리기만 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아무리 풍요롭게 산다고 하더라도 끝내 만족할 수 없는 게 삶의 속성임을 간파했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풍족하고 안락한 것도 반드시 변해간다는 것을 알았고, 집착의 대상이 아님을 터득하여 자유로워졌다. 적은 물질로도 생존이 가능함을 몸소 보였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실천했다.

길에서 태어나 길거리로 출가했고 길가에서 수행해 깨달았고 길로 다니며 가르침을 전한 뒤에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든 존재를 행복으로 이끄는 위대한 스승의 길을 걸었다.

우리가 ‘부처님오신날’에 의미를 두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부처님의 안목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무상(無常)하고 괴로우므로 집착의 대상이 아니며,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만 보지 말고 그 너머에서 숨어 도사리고 있는 괴로운 현상도 보아야 한다. 신록의 계절이라고 해서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분명 아니다. 어느 구석에서 소외된 존재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곳에 관심을 두자.

지금 세상을 보니 누가 보아도 남부럽지 않을 부유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땅콩 몇 조각으로 신뢰를 잃고 뭐가 불만스러운지 욕설 때문에 지탄을 받는가 하면, 한 편으로는 ‘베풀면서 살아라’라는 어머니의 뜻을 평생 실천하여 세인들의 칭송을 받는 이가 있다. 이 분이야말로 ‘부처님오신날’의 의미에 맞는 분이 아니겠는가?

내가 속한 승가도 이런저런 면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불조(佛祖)의 혜명을 이어받는다면서 부처님의 삶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게 사는 부유한 출가자가 있다. 출가자의 부유함은 군자들의 웃음거리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부처님오신날’은 반년 치는 먹을 양식이 채워진다는 날이기도 하다. 채워지는 잿밥에만 마음을 두지 말고,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현혹되지 말고, 신록의 그늘에서 시름에 빠져있는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승가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처님오신날’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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