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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 인권이사회 적정주거 특별보고관(이하 유엔주거특보)이 한국을 방문했다. 5월 14일부터 5월 22일까지 총 9일간 당사자들과 시민사회, 정부 관계자와 면담 등의 방법으로 한국의 주거권 실태를 조사했다. UN 주거특보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 정부에 특별한 주문을 했다. 유엔 특보는 한국의 주거 상태가 국제인권기준에 크게 미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홈리스, 이주민, 성 소수자 등의 주거권을 온전히 보장하고 빈번히 자행되는 강제 퇴거를 비판했다. 점유권을 훼손하고 주거안정을 해치는 주택임대차보호 제도를 개선하여 세입자의 권리와 점유권 향상시켜야 한다고 지적도 했다.

유엔주거특보는 우선 한국 정부가 ‘홈리스(또는 노숙인)’의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바라보는 게 문제라고 했다. 홈리스 당사자들이 수치심을 느끼고 차별과 고립감을 느낀다고 보았다. 홈리스를 향한 차별과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할 것을 권했다.

유엔주거특보는 또 한국의 주거지원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 성 소수자(LGBTI 등)에 대한 차별과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국제인권규약을 심각하게 위배한다고 밝혔다.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정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이주민과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제도를 즉시 개정하고 장애인이 시설 생활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안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유엔주거특보는 한국이 재개발,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 국제인권기준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거 현장에서 폭력과 협박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을 표하고 한국의 강제퇴거 행태가 국제 인권규약을 심각하고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엔주거특보는 주거빈곤층이 거주하는 고시원과 쪽방,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기숙사를 방문하고 어린이를 동반한 난민신청자들의 주거환경을 직접 살폈다. 이들이 사는 곳은 위생 환경이 나쁘고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며 안전이 문제되는 환경에 놓여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주거급여의 현실화를 요구하고 주거 안정성을 보장하여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집수리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도록 임대관련법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또 한국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사실상 임대인의 권리만을 보장하는 제도로 평가했다. 세입자의 계약갱신권이 인정되지 않아 임대료 상한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유엔특보는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가 임대차등록을 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대신에 세입자에게 4년 또는 8년의 거주 기간 보장과 연 임대료 인상폭 5% 제한 방안은 미미한 영향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엔주거특보는 한국 정부가 세입자의 계약갱신권을 인정하여 임대료 상한제가 작동되도록 할 것을 요구하고 모든 민간임대주택의 등록을 의무화해서 세입자의 점유권을 향상시킬 것을 권고했다.

이 밖에도 유엔주거특보는 현행 헌법에 나와 있는 ‘쾌적한’ 주거생활의 개념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국가인권위원회조차도 시민들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가 침해되어도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뼈아픈 일침을 가했다. 유엔주거특보는 한국 정부가 UN사회권규약의 ‘선택의정서’를 조속히 비준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개정하여 시민들이 사회권을 침해당할 때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국민연금기금을 포함한 연기금을 투자할 때나 기관 및 민간투자자가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 인권 실사 제도 도입을 통해 반드시 거주민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것을 권고했다. “수익만 좇는 투자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투자가들이 금전적인 이득이 아니라 거주민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조목조목 옳은 말이다. 정부와 국회가 유엔특보의 생각일 반의반이라도 좇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뼈아프게 새겨 들어야 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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