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10월 4일, 프랑스 파리 동역에 경적을 울리며 열차가 출발했다.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터키 이스탄불까지 가는 이 호화 열차에 부와 권력을 가진 왕족과 귀족, 군인과 부자들이 몸을 실었다. 기차는 독일 뮌헨과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보스니아 사라예보,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등 이국적인 도시들을 지나 동쪽으로 달린다. 열차가 지나가는 나라와 지역마다 특색있는 음식과 음료들이 관광객들에게 제공된다. 이 열차는 1883년부터 1977년까지 동서양 호화 여행의 상징인 ‘오리엔트 특급열차’다.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가는 이 장기여행은 당시 최첨단과 호화로움, 편안함의 상징으로 모두가 꿈꾸던 최고의 여행이었다.

부산에서 열차 표를 끊었다. 2022년 8월 15일 장장 1만1971㎞의 기차여행에 나섰다. 요금은 61만5000원. 경유지는 부산역에서 강릉, 북한의 제진을 지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 독일 베를린이다.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인터넷에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이 같은 가상 기차여행 티켓이 공유됐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동해선과 경의선 남북 철도연결이 선언되자 기차를 타고 유럽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강릉에서 북한 제진까지 이어지는 110.2㎞ 동해선 구간이 복원되면 이 같은 희망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현재 시베리아 황단열차(TSR)로 러시아 국경도시 하산과 인접한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서유럽 방면 모스크바 야로슬라브역까지 9288㎞를 143~146시간이면 갈 수 있다. 평균 60㎞의 속도로 7박 8일이다. 부산서 포항을 경유해 베를린까지 간다면 9~10일 정도 소요될 것이다.

경북도가 지난 24일 포항~영덕 동해중부선 열차에서 한반도 종단열차 조기 개통을 염원하며 북방경제 시장개척단 발대식을 가졌다. 한반도 종단철도 중 영덕∼삼척 122㎞는 2020년 준공 예정이다. 김관용 도지사와 경제·문화사절단은 러시아 극동 지역과 중국 동북 3성을 포함한 1억3000만 명의 소비시장 개척을 위해 28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6박 8일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방문길에 오른다. 남북 평화 정착으로 북방 시장 개척은 물론 부산에서 베를린까지 가상이 아닌 진정한 유라시아 횡단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운행되길 기대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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