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산 두르고 반변천 흐르는 옛 31번 국도 숲길
영양으로 가는 길은 온통 초록으로 가득했고 며칠 내린 비로 미세먼지도 없고 푸른 하늘을 보여주었다. 눈부신 5월 햇살에 온통 초록 물감 가득한 풍광이 잠시 세속을 잊게 한다.
영양읍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봉화로 향한다. 길을 따라 좌우를 오가며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가 바로 반변천이다. 영양을 이야기할 때 물줄기는 반변천, 산줄기는 일월산(日月山)을 빼놓을 수 없다. 일월산에서 발원한 반변천은 영양을 남북으로 종단한 뒤 청송을 지나 임하댐에서 낙동강과 만나는 물줄기다. 길이는 109.4km, 반변천 발원지는 윗대티에 있다. 북쪽으로 달리는 길 좌우로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 거대한 석상처럼 버티고 서 있다. 절벽 퇴적층을 따라 나타나는 초록 물결이 아무리 잘 그린 진경산수화인들 여기에 비하랴. 길옆 곳곳에 심어진 붉은 단풍나무가 녹색 푸르름과 묘한 대비를 일으키며 눈길을 끈다.
옛 국도 길은 원래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을 잇는 31번 국도였다. 산의 등줄기와 목덜미를 잘라 길을 냈다. 일월산에서 캐낸 광물을 봉화군 장군광업소로 실어가기 위해서였다. 해방 후에는 일월산의 질 좋은 소나무를 베어내 옮기는 임도(林道)로 사용됐다. 이처럼 ‘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한(恨) 맺힌 길은 새롭게 포장된 직선도로가 생기면서 우리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져 갔다. 자연스레 발길이 끊어졌고 길은 방치됐다. 금강송이 즐비한 옛 국도길 중간에 서 있는 ‘영양 28㎞’라는 빛바랜 이정표가 수탈과 훼손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새로 국도가 개설되자 쓸모없는 길로 방치되었고, 광산도 문을 닫게 되자 물자 수송로의 역할도 자연스레 끝났다. 옛 국도는 평탄하게 잘 다듬어져 있고 굽이도 심하지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잘생긴 소나무들 사이로 나 있다. 네댓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혼자 생각에 잠겨 걸어도 좋고 여럿이 수다를 떨며 걸어도 좋을 길이다.
옛 국도를 따라 천천히 주변 풍경을 보면서 가다 보면 첫 쉼터가 나온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도 좋다. 정말 이 길로 차가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군데군데 돌로 쌓고 무너져 내린 흙을 치우며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 왼쪽으로 일월산 정상에 설치된 군사시설물과 초록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 쉼터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 내리막은 진등 방향 반변천 뿌리샘 가는 길이다. 칠(칡)밭목 삼거리 방향으로 향한다. 조금 걸어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영양 28km’라는 녹슬고 칠이 벗겨진 오래된 이정표를 보니 반가우면서 착잡한 마음이 든다. 조금 오래된 것이라면 무조건 없애거나 버리는 것이 예사인 요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 옛 국도를 따라 걷다 보면 외씨버선길 끝나는 곳에 칠(칡)밭목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봉화로 가는 외씨버선길이다. 칠밭목 또는 칡밭목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칡이 산을 덮고 있어 칡을 일부러 심어 놓은 밭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 주변은 울창한 낙엽송과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계곡 옆에는 봄부터 여름까지 피어나는 야생화가 볼만하다고 한다.
일단 왔던 길을 다시 올라 서서 왼쪽으로 가다 묘가 있는 곳으로 진행한다.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울창한 숲길은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중간에 마을 주민이 설치한 그네와 긴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일월산 0.8Km 이정표를 뒤로하고 계속 걷는다. 평탄한 길이 끝나고 계곡을 건너면 급한 내리막이다. 크고 작은 돌과 쌓인 낙엽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계곡 물소리 들으며 내려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다. 큰골 갈림길에 다다르면 거의 다 온 셈이다.
텃골, 깃대배기, 깨밭골, 칠(칡)밭목, 말머리등, 샘물내기, 왕바우골, 그루목, 쿵쿵목, 진등 등 걸으며 만나는 옛 마을 이름을 딴 이정표가 얼마나 정겨운지 모른다. 일월산에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수달과 2급인 담비, 삵을 비롯해 너구리, 족제비, 노루, 고라니, 멧토끼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국도 주변은 온통 금강송으로 빼곡한 송이밭이기도 하다. 한동안 송이 때문에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등 갈등을 빚었지만 지금은 사시사철 찾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