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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년 의병대장 할미성 접전 기록 '발견'

아리랑학교 교장 '한양사적' 공개···민중 시각서 을미의병항쟁 기술

황진호 기자 hjh@kyongbuk.com 등록일 2018년05월27일 21시13분  
▲ 문경 출신 불멸의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의 행적을 민중들이 순 한글로 필사한 기록이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문경 출신 불멸의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의 행적을 민중들이 순 한글로 필사한 기록이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서지가로 아리랑을 연구하고 문경시가 주관하는 아리랑학교 김연갑 교장은 ‘한양사적(漢陽事蹟)’이라는 필사 한글 자료를 서울 인사동 고서경매장에서 구입해 본지에 공개했다.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인 김연갑 선생은 “기존 ‘한양가’의 ‘영남대장 누구던가 문경사람 이강영’ 또는 ‘령남대장 뉘기던가 문경사람 리운경’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오류”라며, “‘영남대장 뉘시던가 문경사람 이강연’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70쪽의 장편으로 기록된 이 한양사적의 146쪽과 147쪽에는 을미의병 이전의 패한 원인을 제시하고 드디어 영남대장 이강년이 등장하는 장면이 서술돼 있다.

또한 초두를 “슬프고도 슬프도다 우리 한양사적 이러하다”로 시작해 말미에서 “이 가사를 누가 짓나 영남사람 지였구나”라고 하였음에 이 한양사적의 기록자는 문경인으로 추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이강년 대장의 활동지를 1907년부터 제천, 충주, 단양 등을 중심으로 문경, 영주, 봉화, 강원도 영월, 태백, 강릉, 경기도 가평 등 소백산과 태백산, 설악산, 화악산 줄기를 따라 광범위한 지역에서 전개된 일본 군경과의 대규모 유격전으로 표기했지 할미성(현재의 고모산성) 같은 문경 고유의 지명을 언급한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할미성에서 의병전이 있었음은 1920년대 기록의 문경아리랑에는‘할미성 꼭대기 진을 치고/왜병정 오기를 기다린다’라고 단 1절로 그려져 있다.

이 한양사적에는 더 자세히 그려져 있어 그 가치가 높다.

이 같은 의병의 곤궁하나 의기찬 활동기록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제의 탄압이 있었기 때문에 관찬기록 등에서 회피된 내용인데 아리랑이나 한양사적 같은 민중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료라는 것이다.

마지막 대목은 이렇게 조선 오백 년 역사를 회한으로 회고하여 역사의 교훈을 남기고 있다.

민중의 편에 서지 않은 조정의 역사를 나무란 것이다.

운강이강년의병대장순국11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황용건 사무국장은“한양사적의 의병기록은 문경지방에서 일어났던 을미의병항쟁 상황을 민중의 시각에서 진솔하고 적나라하게 가사체로 기술했다는 점에서 당시 의병 상황과 이를 바라본 민중의 인식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오는 6월 1일 문경 운강이강년기념관에서 개최되는 제8회대한민국 의병의날 기념행사를 앞두고 이러한 중요한 사료가 발견돼 더욱 의미가 깊다고 했다.

아리랑학교 김연갑 교장은 “한양사적이 의병과 운강 이강년 선생의 연구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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