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 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선(禪)시조를 개척한 설악 무산 스님이 5월 26일 오후 5시 11분 열반송을 남기고 적멸(寂滅)의 세계로 들었다.

1989년 낙산사에서 정진하던 중 “밤 늦도록 책을 읽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 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천경(千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란 오도송 ‘바다’를 쓴 무산스님의 속명은 조오현이다. 무산스님은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한국 선시의 맥을 이어온 스님은 등단 이후 한국문학상과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 2007년 ‘아득한 성자’로 정지용문학상 수상했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 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무산스님은 이 시에 대해 의상대사 법성게의 한 구절 “한 생각 속에 두루 무량겁이 있고, 무량겁의 일이 이 순간에 있다. 이 한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보고 있는 그를 꿰뚫어보게 될 것이다”를 시조 형식으로 쓴 것이라 했다. 그는 내가 살아보니 하루살이이고 세상의 무리가 그 하루살이 떼로 보였다고 했다. 또 내게 보이는 것은 그 하루가 평생이고 시방세계라는 것이었다.

무산스님은 당시 수상소감으로 “참으로 좋은 말은 입이 없어야 할 수 있고, 참으로 좋은 말은 귀가 없어야 들을 수 있지” 라고 했다. 시가 인간 정신의 고상한 경지라면 선시는 정신주의 극단이다. 수상 소감 그 자체가 선시의 한 구절이었다.

“지난날 내가 쓴 반흘림 서체를 보니/ 적당히 살아온 무슨 죄적만 같구나/ 붓대를 던져버리고/ 잠이나 잘 걸 그랬다” ‘내가 쓴 서체를 보니’라는 무산스님의 시다. 이처럼 그는 일관된 자기반성의 시를 써 왔다. 무산스님의 입적을 계기로 산만한 오늘날의 우리나라 종교계가 다시 한 번 그의 시를 정독하고 지침으로 삼아야 할 듯하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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