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건보법·신의료기술평가 규칙 등 과도한 장벽
세계 첫 기술 개발하고도 상용화 못하는 경우 수두룩
의료·IT 인프라 뒷받침 해줄 정부 차원의 대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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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뇨진단 모식도
인공지능(AI) 의료를 통한 새로운 의료시대가 열렸지만 우리나라 AI 의료는 규제에 묶여 출발조차 어려워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최초로 바이오·의료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규제 때문에 실용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한세광 교수는 지난해 콘택트렌즈 기업 인터로조와 공동으로 ‘스마트 헬스케어 콘택트렌즈’를 개발했다.

이 렌즈는 당뇨 환자의 눈물에 포함된 당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혈당 수치가 올라가면 렌즈 표면의 코팅이 자동으로 녹아내리며 약물도 나온다.

지난 2015년 해외에서 개발된 스마트 콘택트렌즈가 혈당 수치 감지만 가능했던 것과 달리 즉각적인 처방이 가능하다.

이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개발 됐으나 정작 국내 당뇨 환자를 위해 사용될 수 없는 실정이다.

의료법에서 의사와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단·처방을 받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평가와 허가가 요구돼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AI 의료기기 전문업체 뷰노는 최근 뼈 나이를 진단해 주는 AI 기반 의료 소프트웨어 ‘본에이지’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국내 AI 의료기기로는 최초의 허가다.

하지만 식약처의 허가와 관계없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신의료기술평가 등의 심사를 별도로 또 다시 받아야만 한다.

‘신의료기술’은 최대 280일간 심사가 이어져 오는 2019년에야 최초로 상용화 될 가능성이 높다.

AI 의료를 비롯한 빅데이터·자율주행차·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은 말 그대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과 IT 인프라를 갖춘 한국은 이 분야에서 한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의료법을 비롯한 국민건강보호법, 신의료기술평가 규칙 등 겹겹이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 때문에 세계 최초의 기술을 개발하고도 의료기기 개발업체들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바이오 분야 규제는 1163건으로 이 중 보건·의료 분야 규제만 절반 가량인 553건이나 된다.

미국과 중국 등 외국의 경우 식약처의 허가와 동시에 제품 판매가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식약처 인허가를 받아도 기존기술 혹은 신의료기술 평가 여부가 확정되지 않으면 판매가 불가능하다.

중국은 AI 의료 전문 업체가 131개에 이르는 반면, 한국은 6개에 불과하며 기술을 상용화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한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현행법상 의료기기는 심평원 심사를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며 “식약처의 판매허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심평원 심사를 또 받아야 하는 이중 규제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 “산업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분야는 정부가 앞장서 규제완화를 주도해야 시장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며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신속한 허가 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할 방침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올 상반기까지 VR·AR 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오는 11월에는 디지털헬스 의료기기의 혁신적 허가·심사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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