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짐승이 매화나무 그늘을 등에 업고 기어간다.

부러진 한쪽 다리를 벽돌로 괴고도 절뚝이지 않는다.

발바닥이 젖어 곰팡이가 피었는데 박박 긁지 않고

마당에 네 개의 발자국을 천천히 찍고 있다

나도 짐승의 널따란 등에 그늘보다 무겁게 엎드린다.

짐승은 매화나무 그늘을 담벼락 쪽으로 밀어낸다.

틀림없이 한곳에 뿌리내리는 법을 배우지 못해

나처럼 숲속에서 도망쳐 매화민박에 묵었을 짐승,

평상이 되는 줄도 모르고 납작 엎드려 단잠에 들었다.

등허리에 문신처럼 박힌 나이테가 성장을 멈춘 것은

놀러온, 도망친, 연애하는, 슬픈, 엉덩이 때문은 아니다.

숲을 떠난 나무가 뿌리를 찾기 위해 남겨놓은 증거이다.

네모난 짐승이 햇볕을 향해 남몰래 발자국을 뗀다.

네모난 황소 같은 평상에, 평상이 될 것만 같은 나를

단단히 업고 숲속으로 돌아갈 것 같은 매화민박이다.





평상이 애완견처럼 착한 짐승이 되어주니 참으로 기쁘죠. 나를 위해 그늘을 향해 기어가고, 때로는 삶을 위로해 주기도 하죠. 오래 평상에다 말 걸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내가 평상이 될 것만 같죠. 왜냐하면 함께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야 하니까요. 결국 태초까지 족보를 따지자면 인간은 나무의 후손이 아닐까요. 주위에 나무로 만든 착한 짐승들을 더 찾아 봐야 하겠어요. 의자 짐승, 책상 짐승, 탁자 짐승, 마루 짐승, 장롱 짐승 ……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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