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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서양 문화의 양대 축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로마 문명이다.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된 기독교는 유럽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했고, 민주제 원조국 그리스는 오늘날 정체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근작 ‘그리스인 이야기’는 그들의 민주주의와 행적을 다룬다.

기원전 5세기 중엽께 도시국가 아테네는 페리클레스가 이끌었다. 민주 정치의 황금시대를 견인한 그는 언어 능력이 탁월한 영도자였다. 당시의 아테네는 국정을 10개의 ‘트리부스’에서 선출된 10명의 ‘스트라테고스’가 맡았다. 페리클레스는 33세에 처음 당선된 이래 32년에 걸쳐 연속으로 뽑혔다. 6천 명 정도로 추산되는 트리부스 유권자의 과반수가 계속 지지했다는 의미.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첫 해가 끝난 겨울철, 그는 스트라테고스로서 전몰자 추도사를 하였다. 유럽의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된 명연설. 지금 읽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공무 참여와 기회균등, 문호 개방과 언론 자유, 합리적 교육과 유가족 지원, 그리고 시민들 문화 예술 향유를 보장한다는 내용.

특히 다음과 같은 대목이 놀라웠다.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은 고요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떠받치는 시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죽비로 후린 듯 강렬한 문구였다. 자의든 타의든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지인을 가끔씩 접하기 때문이다.

지방 선거일이 다가온다. 페리클레스의 충고가 가슴을 휘도는 간택의 순간이다.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는 장삼이사들. 한데 우리 지역의 대사를 누구한테 맡길지 고뇌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모순된 삶이겠는가.

옛날 선조들은 인재를 발굴할 때 신언서판을 중시했다. 풍채와 언변과 필적과 문리로 됨됨이를 판단했다. 그런 영향 탓인지 작금의 지도자를 뽑는 투표에도 상당한 공명을 미친다. 번듯한 용모와 유창한 말투를 보면서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적잖다. 미인에게 관대한 세상처럼 말이다.

하지만 좋은 인상이 능력과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니 흥미롭다. 영국의 지자체 의원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외모만 보고 찍었다가는 무력한 인물을 선발할 빈도가 높다고 한다. 성격이 무난한 후보도 그렇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

요즘은 지식의 온갖 부분을 SNS에 의존하는 시대다. 그만큼 가짜도 다분할 여지가 크다. 미국의 연구팀은 검색할 때 뜨는 순서를 조작했더니 지지도에 제법 차이가 생겼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의 클릭공장에선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생산해 선진국 기업에 판매하는 산업도 호황이다. ‘구글폭탄’이나 ‘구글댄스’가 그냥 생긴 신조어가 아니다. 비판적 시각으로 뉴스나 댓글을 바라볼 이유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인물은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이다. 훌륭한 배우의 얼굴에 드라마가 어렸듯이 난관을 거친 나름의 주름살을 가진 야심만만 도전자들. 과거의 역정을 보면 미래의 비전도 짐작할 수 있지 않으랴 싶다.

아테네 민주 정치의 금자탑을 세운 페리클레스는 리더의 네 가지 덕목을 말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식견, 그것을 설명하는 대화술, 애국심, 재물에 대한 무욕 등이다. 유권자와 후보자가 서로를 응시하는 마음의 거울이 아닐까. ‘Life is Choice between Birth and Death.’ 사르트르의 명구다. 어떤 선택은 우리의 운명을 바꾼다. 투표가 그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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