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7월 31일 러시아 크레믈린궁 성 블라디미르홀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역사적인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서명했다. 1982년 6월 협상을 시작한 이후 장장 9년 만의 일이었다. START는 1970년대 후반 들어 소련의 군사, 전략적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때 시작된 전략무기, 특히 전략핵무기 감축을 위한 협상이었다.

미소 두 정상은 춘추 전국시대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든다는 ‘주검위리(鑄劍爲犁)’의 의식처럼 협정서에 장거리미사일 탄두를 녹여 만든 특별한 펜으로 서명을 마친 뒤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부시 대통령은 “START협정으로 반세기에 걸친 군비증강의 역사를 역류시켰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반세기에 걸친 불신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새 역사의 장을 연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반도에서도 전쟁이 종식되고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주검위리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6·12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가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준비 중이다. 종전선언은 1953년 7월 27일 서명한 정전협정의 종식을 의미한다.

종전선언의 최종 목표는 평화협정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19일 언론사 사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말한 것처럼 ‘디테일의 악마’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정전체제를 끝내고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가장 핵심적 선결 조건은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의 폐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이후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에서 한층 누그러진 듯한 발언을 했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를 일괄타결이 아닌 점진적 타결 방식으로, 비용은 한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발언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문에 서명하기 전에 ‘디테일의 악마’부터 잡아야 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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