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누름 때
황토진흙 마르는 내음새
함뿍 핀 모란(牧丹)꽃에
꽃가루 꽃가루……숨이 매켜……
목안에 감기는 엷은 갈증(渴症)


아아 목말러라 목말러라


보리누름 한철은
누나 내음새 어매젖 내음새
잊었든 어매젖 내음새
큰아기 살결 내음새
목안에 감기는 엷은 갈증(渴症)


아아 외롭어라 외롭어라





냄새는 외롭고 쓸쓸한 침묵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다. 생명의 갈증도 유년의 기억 속에서 자연과 육친(肉親)의 냄새로 터져 나온다. 후각이야말로 시각과 청각보다 더 근원적인 감각이고 심금을 울리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나는 왜 시각적인 색채에만 얽매인 것일까. 보리누름(보리가 누렇게 익는 철) 때 각기 달랐던 초록이 한 빛깔이 되니까.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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