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을 놓고 기업의 고민이 깊다. 당장 다음 달부터 주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을 시작으로 시행에 들어간다. 근로시간 단축은 최저임금 인상문제나, 김영란법보다 오히려 더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회적 파장이 큰 문제다. 기업 경영과 노동시장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대 사안인데도 정부는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구체적 상황 적용의 세부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거래 업체 관계자와 식사를 하는 시간과 부서회식 시간, 해외 출장 때 이동 시간 등은 물론 업무 중의 휴식시간 등 애매한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다. 영업직원이나 운전기사, 신문사 기자처럼 외근이 많거나 대기시간이 긴 근로자들에 대해 근로시간 산입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일선 기업들이 혼란스럽다.

기업이 자의적으로 적용했다가는 사업주가 징역이나 벌금형을 받아야 한다. 300인 이상의 대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정시퇴근제와 유연근무제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지만 애매한 사안들이 많아서 정부 지침 없이는 자칫 법을 위반하게 될 것이다.

불 보듯 뻔한 급격한 최저임금의 인상의 문제점에 대해 각계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강행한 것처럼 주 52시간 근로제도 산업계가 현실을 무시했다는 불만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시간 싸움을 벌여야 하는 해외 건설, 정보기술, 게임업체 등 벤처업체가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하지만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특례업종을 지나치게 좁혀놓아 기업 경쟁력을 상실하게 할 우려를 낳고 있다.

철강기업처럼 24시간 시설을 운행해야 하는 장치산업이나 소수의 근로자가 장기간 고립돼 일하는 해양플랜트업체 등도 인력 운용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특례업종 확대와 탄력 근로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 현장의 이 같은 주문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세부 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달 근로시간 단축으로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것이 끝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지난 2월이다. 과거 통상임금 확대 등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변화가 있을 때마다 세부 지침을 만들어 현장에 배포했는데 법 시행 20여 일 앞두고도 감감소식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환과 함께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경제정책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처럼 근로시간 단축도 정부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해 혼선을 빚고 있다. 사전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줄소송이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근로자와 사용자 양측 모두의 혼란을 막을 지침 마련이 시급하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