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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섭의 신삼국유사] 61. 김유신의 신력과 태종의 위엄

중국의 천자도 인정한 성스러운 김유신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등록일 2018년06월07일 18시18분  
김유신이 기도 수행한 단석산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평정하고 돌아간 뒤에 신라 왕은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백제의 남은 군사를 쫓아서 잡게 하고 한산성(漢山城)에 주둔하니 고구려·말갈(靺鞨)의 두 나라 군사가 와서 포위하여 서로 싸웠으나 끝이 나지 않아 5월 11일에 시작해 6월 22일에 이르니 우리 군사는 몹시 위태로웠다. 왕이 듣고 여러 신하와 의논하되 결론이 나지 않는데, 김유신이 달려와서 일이 급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고 오직 신술(神術)이라야 구원할 수가 있다면서, 성부산(星浮山)에 단(壇)을 쌓고 신술을 쓰니 갑자기 큰 독만한 광채가 단 위에서 나오더니 별이 북쪽으로 날아갔다(이 일로 해서 성부산이라고 하나 다른 설도 있다. 산은 도림(都林) 남쪽에 솟은 한 봉우리가 이것이다.

한산성 안에 있던 군사들은 구원병이 오지 않는 것을 원망하여 서로 보고 울 뿐이었는데 이때 적병이 이를 급히 치고자 하자 갑자기 광채가 남쪽 하늘 끝으로부터 오더니 벼락이 되어 적의 포석(砲石) 30여 곳을 때려 부쉈다. 적군의 활과 화살과 창이 부서지고 군사들은 모두 땅에 자빠졌다가 한참 만에 깨어나서 모두 흩어져 달아나니 우리 군사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태종(太宗) 무열왕(武烈王)이 처음에 왕위에 오르자, 어떤 사람이 돼지를 바쳤는데 머리는 하나요 몸뚱이는 둘이요, 발은 여덟이었다. 의론하는 사람이 이것을 보고 말했다. “이것은 반드시 육합(六合)을 통일할 상서(祥瑞)입니다.” 이 임금 대(王代)에 비로소 중국의 의관(衣冠)과 아홀(牙笏)을 쓰게 되었는데 이것은 자장법사(慈藏法師)가 당나라 황제에게 청해서 가져온 것이었다.

신문왕(神文王) 때에 당나라 고종(高宗)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서 말했다. “나의 성고(聖考) 당태종(唐太宗)은 어진 신하 위징(魏徵)·이순풍(李淳風) 등을 얻어 협심동덕(協心同德)하여 일통천하(一統天下)하였다. 그러므로 태종황제(太宗皇帝)가 되었다. 너희 신라는 바다 밖의 작은 나라로서 태종(太宗)이란 칭호(稱號)를 써서 천자(天子)의 이름을 참월하니 그 뜻이 불충하다. 속히 그 칭호를 고치도록 하라.” 이에 신라왕은 표(表)를 올려 말했다. “신라가 비록 작은 나라지만 성스러운 신하 김유신을 얻어 삼국을 통일했으므로 태종(太宗)이라 한 것입니다.” 당나라 황제가 그 글을 보고 생각하니, 그가 태자로 있을 때에 하늘이 허공에 대고 외치기를, “삼십삼천(三十三天)의 한 사람이 신라에 태어나서 유신이 되었느니라” 한 일이 있어서 책에 적어둔 일이 있는데, 이것을 꺼내 그 기록을 보고는 놀라고 두려워 마지않았다. 다시 사신을 보내어 태종의 칭호를 고치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이상 일연선사의 기록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김유신의 공부가 신병을 움직이는 경지에 아르렀고 중국의 천자도 하늘에서 보낸 사람이란 것을 인정하였다는 취지다. 사실, 당나라와 신라와 병립하는 상황에서 가장 영걸스러운 창건주의 시호인 태종이란 이름을 바로 곁의 우방국인 신라가 함께 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비록 언사는 공손하지만, 신라의 자존심이 세워지는 대목이다.

장춘랑(長春郞)과 파랑(罷郞)

처음에 백제군과 황산에서 싸울 때 장춘랑과 파랑이 진중(陣中)에서 죽었다. 그 뒤 백제를 칠 때 그들은 태종의 꿈에 나타나서 말했다. “신 등이 옛날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쳤고, 이제 백골이 되어서도 나라를 지키려고 종군(從軍)하여 게으르지 않습니다. 하오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위엄에 눌려 쫓기고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우리에게 적은 군사를 주십시오.”

대왕은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두 영혼을 위하여 하루 종일 모산정(牟山亭)에서 불경을 외고 또 한산주에 장의사(壯義寺)를 세워 명복을 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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