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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경북을 걷다] 6. 울진 십이령길(금강소나무 숲길)

한걸음 한걸음 마음으로 걷는 옛길···열두 고개 굽이굽이 사연도 한가득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등록일 2018년06월10일 17시53분  
징검다리를 건너는 탐방객
울진에서 봉화와 안동, 영주 등 내륙지방으로 행상할 때 넘나들던 길에 있는 고개가 12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십이령길 또는 울진 보부상 길이다. 울진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지고 출발해 내륙으로 넘어갈 때 바지게꾼들이 첫 밤을 보냈던 곳이 바로 울진군 북면 두천1리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주방과 마방이 있었던 탓으로 하룻밤 묵는 과객과 장사꾼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열댓 가구가 사는 한적하고 평범한 산골마을에 불과하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불영계곡을 관통하는 36번 국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십이령길은 울진과 봉화를 동서로 연결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장사를 했다. 울진에서 쇠치재-바릿재-샛재-너삼밭재-저진터재-작은넓재-큰넓재-고치비재-곧은재-막고개재-살피재-모래재 등 열두 고개를 넘어 봉화까지 150리 넘는 길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

금강소나무숲길 안내도
바지게꾼은 보부상 조직이 약화된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상인을 말한다. 무거운 해산물을 지고 좁은 산길에서도 날렵하게 다닐 수 있도록 다리를 잘라낸 바지게를 메고 다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를 때도 서서 쉬었다 해서 ‘선질꾼’,‘등금쟁이‘로 부른다. 바지게꾼들의 고단한 삶과 거친 숨소리, 땀 냄새를 조금이나마 추억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금강소나무 숲길 1구간 십이령길이다. 사위를 아우르는 천혜의 자연풍광까지 더하면 이 시대에 이런 비경이 아직 남아 있나 싶을 정도다. 사시사철 푸른 청정수를 받아내는 대광천, 차가움으로 유명한 찬물내기, 게다가 하늘을 찌르듯 보무도 당당한 우리나라 최대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이다. 이처럼 500년이 넘는 금강소나무 솔향을 온몸으로 느끼며 숲의 휴양과 치유기능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1리에서 소광2리까지 약 13.5㎞로, 걷고 쉬며 6시간 넘게 걸린다.

남매 금강소나무
울진 바다에서 내륙 대처로 나가기 위해서는 십이령길, 고초령길(매화장), 구주령길(평해장)이 주 통로였지만 그 중에도 십이령길을 가장 선호했다. 바릿재, 샛재, 너삼밭재 등 정겨운 이름의 고개를 넘는데, 울진지역에 7곳, 봉화 지역에 5곳이 속해 있다. 공식 이름은 십이령길이나 보부상 옛길이 아닌 금강소나무 숲길이다. 현재 6개 구간으로 나누어 산림청에서 조성했으며, 총 거리는 74㎞ 정도에 달한다.

장수봉 숲해설사
울진군 북면 두천1리 금강소나무 숲길 입구 주차장에서 숲 해설가 인솔 아래 십이령길로 들어선다.

울진내성행상불망비각
열두 고개 중 네 고개가 포함된 1구간은 보부상들의 애환이 담긴 ‘울진내성행상불망비’와 ‘조령성황사’를 비롯한 옛 주막터와 화전민터 등이 남아 있다. 또한, 울창한 숲과 계곡, 산양을 비롯한 멸종위기 동식물 서식지, 붉은색으로 곧게 쭉쭉 뻗은 금강소나무 군락을 자연스럽게 만나며 걷는 구간이다. 냇가 징검다리를 건너면 ‘울진내성행상불망비(蔚珍乃城行商不忘碑)’ 비각 건물이 보인다. 이 비는 1890년 보부상들이 봉화 소천장을 관리하는 반수(우두머리) 권재만과 접장(장터 관리인) 정한조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쇠로 만든 철비(鐵碑)다.
옛길 걷는 탐방객
첫 고개인 바릿재 주변을 둘러싼 산세는 험준해 보였지만 길은 의외로 순탄하고 부드러웠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산길이지만 경사는 심하지 않다. 초록 물결이 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율동감 있게 굽이치며 조금씩 고도를 높이다가 슬그머니 고갯마루를 넘는다. 걷는 내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이 정적을 깨운다. 바릿재란 소에다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다녔다고 해서 붙여졌다. 완만한 내리막길은 곧장 평지로 이어진 옛 장평마을로 임도 구간과 연결된다. 임도 따라 걷다 왼쪽으로 내려오면 서들골, 시싯골, 창골 등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합류하는 곳에 쉼터가 있다.

산양보호 표시판
양옆 깎아지른 돌산은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천연기념물 제217호 산양의 주 서식지라고 한다. 겨울철 폭설로 아사(餓死)하거나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여 죽는 경우가 많아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밥벌이에 지친 우리에게 숲 속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준다. 땀에 살짝 젖은 몸은 햇빛과 공기, 피톤치드를 받아들인다고 바쁘고, 눈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한다고 틈이 없고, 머리는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고 정신이 없다. 구간 일부는 차가 다닐 만큼 넓은 길이지만 그늘은 거의 없다. 그대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가는 덕택에 발걸음은 가볍다. 임도와 나란히 이어진 숲길을 걷다 보면 산양보호와 황장봉산동계표석을 만나기도 한다.

황장봉산동계표석 탁본
두천1리에서 약 6.5km 걸어오면 십이령길 중간지점 쉼터인 찬물내기로 삼복염천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흐른다는 곳이다. 직접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예약할 때 점심 예약을 하면 시간에 맞추어 배달해준다.
점심으로 나온 비빔밤
식사는 두천1리 마을에서 서로 돌아가면서 준비한다고 한다. 찬물내기에서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남매처럼 다정하게 선 금강송 두 그루를 지난다. 제법 가파르고 비좁은 산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금강소나무 숲길을 오르고 내리는 길의 조화 속에 누가 뒤에서 밀어주는 듯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간다. 십이령길 두 번째 고개인 샛재(鳥嶺·595m)다. 경북 문경의 ‘새재’와 같은 이름이다. 울진 바닷가 사람들은 한양을 가기 위해 ‘새재’를 두 개나 넘어야 했다.

바람이 시원하다. ‘조령성황사(鳥嶺城隍祠)’ 당집이 눈에 들어온다. 1819년 지역주민과 보부상이 만들어 휴식처로 이용하기도 하고 제를 올렸다. 처음엔 부상(負商)들이,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선질꾼들이 십이령을 오가며 제를 지냈고, 선질꾼이 사라진 이후에는 마을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정면 입구에 ‘조령성황사’ 편액이 걸려 있다.

조령성황사 당집
내부 제단 정면에 ‘조령성황신위’라 쓴 위패를 모셔두었다. 성황사 아래에는 한때 봉놋방을 가진 큰 주막이 있었으나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이후 화전민 마을과 함께 철거됐다고 한다. 바위에 구멍을 뚫고 세워놓은 비석과 마귀할멈의 전설이 전해오는 말무덤도 눈길을 끈다. 주변에 색이 표시된 소나무(4137그루)는 문화재 중수 시 베어내기 위한 표식이란다. 주변에는 속성수로 알려진 낙엽송이 많이 심겨 있다.

성황사에서 대광천 초소 물길을 만날 때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에 그늘진 숲길로 십이령길에서 가장 마음 편한 구간이 아닌가 싶다. 삼거리 이정표에서 곧바로 내려오면 대광천 초소 쉼터다. 맑은 물이 흐르는 물길을 두어 번 건너면 불영계곡과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을 잇는 너삼밭 공터에서 도로 따라 걷다 오른쪽 어두운 숲으로 들어선다. 소광2리까지 고개를 두 개 더 넘어야 한다. 한동안 인적이 끊어졌던 숲에 야생화가 피었다. 너삼밭재 오르기 전 화전민 터와 보부상들이 밥을 지어 먹거나 방아를 찧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지막 고개인 저진터재에서 울진 흥부(지금의 부구) 지방에 전해오는 구전 민요 십이령가(十二嶺歌) 일부분인 바지게꾼 노래를 숲 해설사가 들려주었다.

“미역, 소금, 어물지고 춘양장 언제 가노/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 가노/반평생을 넘던 고 이 고개를 넘는구나/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가노/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다시 내리막을 30분 정도 더 걸어가면 십이령길 종점인 소광2리 옛 소광초등학교 운동장에 들어선다. 거의 한나절 넘게 걸린 여정이 끝난 것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해산물을 지고 내륙을 향해 걸어야 했던 고달픈 바지게꾼의 애환을 느끼기 위해 가벼운 배낭을 메고 이 길을 찾아오고 있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옛길은 원형을 잃어 자연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졌지만, 의젓하게 오래된 시간의 크기만큼 넉넉함을 우리에게 그 공간을 내어 주고 있다. 길은 변하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 금강소나무 숲길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탐방 인원은 각 구간별 80명이다. 최소 3일 전 인터넷(www.uljintrail.or.kr)이나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780-3940~3)로 하면 된다. 모든 구간 오전 9시에 출발하며 숲 해설가가 동행한다. 참가비는 없다. 십이령길 출발지는 울진군 북면 두천1리 237(십이령로 2273)이다.
▲ 글·사진=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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